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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지 오웰이 1946년 쓴 짧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의 구절이다. 지금은 몹시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조지 오웰이라고 하면 역시 『1984』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되고 나 또한 이 두 작품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이런 청맹과니 같은 짓은, 이 두 소설이 조지 오웰의 저술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란 에세이집을 읽으면서부터. 그런데 이건 뭐 소설이나 다름없다 ㅡ 읽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오웰은, (일단은)소설가이지만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는 거다. 이 양반이 대학을 포기하고 식민지 경찰 생활을 했다는 이력만으로도, 또 부랑자와 접시닦이를 해봤다는 경험만으로도 쉬 추측해볼 수 있다. 한편 타이틀을 에세이(「나는 왜 쓰는가」)의 제목으로 차용한 것을 보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1991)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만 그런가? 하여간, 그럼에도 오웰의 소설과 에세이를 따로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84』와 『동물농장』만 봐도 그렇다. 《뉴 라이팅》지에 게재한 「코끼리를 쏘다(Shooting An Elephant)」에서 그는 식민지 경찰이었는데,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코끼리를 보고 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한다. 그러나 잠시 후 오웰은 다시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유?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모두 코끼리한테 총을 쏠 것이라 확실히 믿고서 제법 흥이 나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마술사의 묘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ㅡ 「코끼리를 쏘다」(1936)




그는 엄청나게(몇 페이지에 걸쳐) 고민한다. 코끼리를 쏠 것인지를. 종국엔 세 개의 탄알을 소비하며 코끼리를 쓰러뜨리긴 하지만 그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그건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에세이집이라고 하기엔 좀 많은(?) 29편의 글들을 담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은 저 옛날 키치적인 슬로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의 경고성 조곡(組曲과 弔哭 둘 다 마침맞지 않을까)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