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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논문 잘 쓰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9, 마니아판)


연과학 ㅡ 을 하는 사람들 ㅡ 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쓴 책은 주제를 막론하고 거의 뭐든지 재미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이유, 표지 디자인이 멋져서. 이게 내가 『논문 잘 쓰는 방법』을 택한 이유다. 논문을 잘 쓰고 싶어서라고는 (절대)말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논문을 쓸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그럼 이 책의 정체는 대체 뭐냐, 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예컨대,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개체 삽입' 기능이 있다는 것을 해당 메뉴를 보고 알았다고 하자. 당신은 개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적절한 곳에 삽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게 없다. 도움말을 작동시키면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타난다. 「문서에 개체를 삽입하는 기능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도움말 작성자가 모든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ㅡ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그럼 이제 이런 식으로 『논문 잘 쓰는 방법』을 설명해보자. 『논문 잘 쓰는 방법』은 논문을 잘 쓰는 방법을 적은 책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 글의 작성자가 모든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고 생…… 설명 끝. 기호학자이면서 소설가라는 점이 저자의 책을 읽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공부하고 글을 쓰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사고를 정리하고, 정리된 사고를 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꼭 학생이나 학문에 있는 사람들만 읽을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무지렁이에게도 유용하고, 좋다 ㅡ 심지어 이 양반의 지독한 위트는 논문 쓰는 일에도 드러나니 더 말할 것 없다. 그러니 『논문 잘 쓰는 방법』을 단순히 논문을 쓰기 위해 읽는 것은 헛일이고, 글을 논리적으로 쓰고 문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말하는 것과 쓰는 것과 정리하는 것은 다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일련의 과정과 사고하는 흐름의 형태가 다른 거다. 그러므로 각종 은유를 들어 멋들어진 만연체의 문장도 좋지만 특히 '논문을 잘 쓰고 싶을 때'와 '사고를 정리할 때'는 간단명료하고 ㅡ 때로는 아주 짧아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논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편이 좋다 ㅡ 적확한 초점이 필요하다. 아무리 히피일지라도 어깨 위에 비둘기 똥이 묻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