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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박종호 (시공사, 2012)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 8점
박종호 지음/시공사


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를 오랜만에 들었다. 자그마한 미니 CD가 초판 한정으로 책 뒤에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글자글한 소음마저 달큼하달까.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음악은 너무나 세련되고 매끈해서 날카롭기까지 한데 비해 카를로스 가르델의 음성으로 듣는 건 아련할 정도다. 섹스가 육체의 위로라면 탱고는 영혼의 위로다, 라는 카피가 헛되지 않게 『탱고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려한 묘사와 함께 곁들여진 사진으로 아르헨티나의 무더운 밤을 맛있게 담아냈다.





그날, 탱고 공연을 보고 나온 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밤하늘에 초승달이 위태롭게 떠 있던 날 (...)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 포스터였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 있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 조금이라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절대 출 수 없는 춤. 저런 춤을 추는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순간, 벽에 붙은 포스터의 글씨가 이렇게 읽히기 시작한다. 「사랑을 하면 마음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놔두면 돼요. 마음이 엉키면 그게 바로 사랑이죠.」


ㅡ 이병률 『끌림』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탱고가 원래 남자들끼리 추던 춤이라는 걸. 부두 이민자들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서로 부둥켜안고 추던 춤이라는군. 유흥가를 찾은 노동자들이, 육체의 만족은 얻었지만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자기들끼리 탱고를 추었단다. 그렇게 시작된 탱고는 노랫말도 붙여지고 반도네온 등의 악기로도 악단이 구성됐으며 점점 하류층에서 중상류층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음악을, 우리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포르 우나 카베사」로 오늘날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알게 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시각장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립도서관장까지 했던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탱고의 가사도 썼다는 것. 허, 이래서야 정말 나는 탱고란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거였다……. 다시 책을 보자면 이건 비단 탱고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아르헨티나라는 도시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보르헤스는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너무나 좋아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이 도시를 좋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질투심과 같은 사랑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일본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를 전공할 걸 그랬나……. 에이, 그냥 가르델의 노래나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