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나오키 산주고 (북스피어, 2011)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 10점
나오키 산주고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오키 상이란 건 많이 알고 있을 거다. 그의 친구 기쿠치 간(菊池寬) ㅡ 『무명작가의 일기』와 『아버지 돌아오다』를 쓴 그 양반 말이다, 이걸 모른다고 하면 『진주부인』 정도는 알 수도 있으려나 ㅡ 이 아쿠타가와 상과 함께 그들을 기리고 후진 육성에 힘쓰고자 제정한 문학상이다. 그런데 성이 나오키고 이름은 뭘까, 하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을지 몰라 풀네임을 적는다. 그의 이름은 나오키 산주고(直木三十五)다. ……사실 이건 필명이고, 본명은 우에무라 소이치(植村宗一) ㅡ 대학 시절 어느 교수가 '우에무라 슈이치'라고 읽는 걸 대놓고 지적했는데도 못 들은 척 넘어갔던 게 생각나는군, 근데 사실은 그렇게 읽는 게 맞는 거면 어떡하지 ㅡ 다. 여기서 우에(植)란 한자를 둘로 나눠 나오키(直木)를 만들었다. 처음 이 필명을 사용한 때가 서른한 살이어서 그때는 산주이치(三十一)였는데 계속해서 나이를 먹으니(당연하다!) 필명도 계속 바뀔 수밖에. 결국 기쿠치 간으로부터 타박(?)을 받아 나오키 산주고란 필명으로 계속 사용하게 된다. 뭐,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어쨌든.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에스노벨 시리즈 중 제3권)를 펴보면 지나치게 세심할 정도로 문학을 구분해놓았다. 하지만 내가 이걸 읽고 내린 결론은 뭐냐 하면, '(대중)문학이란 (넓은 의미로)재미있어야 한다'라는 거다. 실제로 나오키는 이렇게 적는다. 「대중 문예란 표현을 평이하게 하고 흥미를 중심으로 하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또는 거기에 인생에 대한 해설과 인간 생활상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 적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반드시 기술(記述)적 센스가 있을 것. 왜냐하면 문학이란 결국 텍스트의 문제이며 독자가 활자를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학은 언어의 표현에 구애될 수밖에 없다. 이따금 스스로가 상당한 기교를 지녔다는 것을 피력하려는 나머지, 당최 무슨 의미인지 파악조차 하기 힘든 문장을 갈긴 작가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애매모호하게 써놓고 심오하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심산이다. 물론 추상적이고 모호한 문장은 때에 따라 굉장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며 감동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소설이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반대로 난삽한 문장도 싫은 건 당연하다). 그럼 당연히 문학이란 '이야기'다. 나는 주제를 불문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으면 그걸로 그 작품을 최고로 삼는다. 예술이냐 비예술이냐는 과감히 차치한다. 예술과 비예술이란 말의 의미도 모르겠거니와 설령 그렇게 나눈다고 해도 나 같은 독자에겐 쓸모 없는 논리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간과하고 있는 건, 적어도 이런 말들은 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는 거다……. 상당히 어중간한 말이다. 그러나 재미있으면 읽는다, 라는 인과관계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이것은 ㅡ 작가와 문학 · 문학과 독자를 떠나 이 책과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출판사 북스피어의 에스노벨 시리즈 중 가장 첫 권 발행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멋지다. 수요가 적을 수도 있다. 다음 시리즈가 출간되지 못할 수도 있다. '재미'라는 감정적 요소가 독자와 매치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말에 100%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