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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일본의 검은 안개(전2권)』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개……. 어떤 사실이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 묻히다'와 같은 관용구를 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 논픽션은 패전 뒤 일본이 미국에 점령되었던 시대에 일어난 12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미해결로 끝이 났다(그런데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제강점기 혹은 지금 이 순간에 빗대어도 이 '안개'는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사건들에는 모두 GHQ(연합국 총사령부)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다고 추측되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최대의 이익배당을 챙긴 것 역시 GHQ라고 생각된다(하권 p.360). 내가 보기에, 텍스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해도 결과는 '미해결'이라는 형태로 또는 '안개' 속에 묻힌 채로 끝났을 것만 같다. 그 배후는 마치 요술 망토로 모습을 감춰 우리 앞에서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_ 시모야마 국철 총재 모살론」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일본의 초대 국철 총재인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定則)가 출근길에 행방불명되어 이튿날 토막난 사체로 철길 위에서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국철은 미 점령군이 장악하고 있었고(당연하다) 전후(戰後) 귀환자들을 끌어안은 국철은 대규모 인원정리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시모야마 총재의 죽음은 자살설과 타살설을 두고 논쟁이 되었다. 이 사건에는 특이점이 있다. GHQ 산하의 CTS(민간수송부)에서 그를 총재로 위임했는데 원래 시모야마는 기술 분야 출신이었다. 그래서 무려 95,000명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민을 가져 망설이게 되었다. 이에 CTS의 담당자 섀그넌 중위는 그것에 불만을 품고 한밤중에 시모야마의 저택에 찾아가 윽박지르며 소동을 피웠다. 또 하나, 실종되기 전 시모야마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는 실종된 당일 아침 출근길 운전기사에게 「A로 가라」고 했다가 다시 「B로 가야겠어」, 「아니야, 다시 A로」와 같은 이상한 언동을 했다. 그러다 결국 미쓰코시 본점으로 차를 돌렸는데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비가 상당히 왔음에도 이후 그의 들어 올려진 몸통 밑으로는 땅이 말라있었다든가, 죽기 전의 그를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너무도 구체적이고 세세해서 오히려 만들어진 각본 같았다든가, 사체가 철길 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옷에 기름이 묻어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속옷에까지 기름과 검은 때가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든가, 사체에 이상하리만치 혈액이 적었다든가 하는 의문점이 발생했다…….



위에서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사건들 뒤에는 GHQ가 있을 것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은 저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를 따라가다보면 알 수 있고, 또한 '추리'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추측' 혹은 '추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가능성이 있을 뿐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병원에서 의사가 내리는 진단은, 이전까지 이러이러한 증상을 보인 환자들의 진단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내리는 '추론'이다. 다시 말해 의사도 추리를 한다. 내 생각에 의사는 「당신의 병명은 100% 이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고 그렇게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단지 여러 가지 근거와 단서를 갖고서 환자의 병을 추측해 가능성이 가장 많은 쪽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세이초도 마찬가지다. 그가 조사하고 추리하고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픽션 이상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들 개개인이 언제 어떤 일에 이런 식으로 연루되어 '범인'이 될지 모른다는 조건 속에 살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물론 이 12가지의 이야기는 전쟁과 점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정된 사건들이지만, 이와 비슷한 모략이나 모함이 오늘날이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다이아몬드를 사랑한 사람들 _ 정복자와 다이아몬드」를 볼까.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일본은 전쟁의 승리와 전쟁 물자의 조달을 위해 국민들에게 각종 귀금속을 사들였다. 이렇게 접수된 귀금속 중에서도 다이아몬드의 양은 엄청났다. 이야기는 이 다이아몬드의 대부분이 사라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부가 「다이아몬드는 목표의 아홉 배, 백금은 두 배가 걷히는 큰 성과를 올렸다」고 발표했는데, 그 목표액이 대체 얼마인지는 공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걷힌 다이아몬드는 전후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1945년 가을 GHQ의 ESS(경제과학국) 국장 크레이머 대령이 장갑차에 병사 30여 명을 태우고 중앙은행을 둘러싼 일이었다. 그는 감찰을 한다는 명목으로 은행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초조하게 한 방씩 살펴보더니, 지하실에 내려가 네 개의 대형 금고를 열고 그 금고 속을 정밀하게 감찰했다. 그리고 그 후에 일본 정부에서 국민들로부터 사들인 귀금속을 관리하고 있던 미국 측의 머리 대령이라는 사람이 본국에 소환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았다. 일본에서 대량의 다이아몬드를 반출했다는 혐의였다. 그런데, 대체 일본 중앙은행 지하실의 금고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GHQ는 점령했던 일본을 모든 면에서 무력화시키고 일본 정부의 힘을 '거세'했다. 상황은 조금 다를지라도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떠올리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이다 ㅡ 책은 「그들의 이상한 전쟁 _ 모략 한국전쟁」에서 남침설과 북침설, 한국전쟁을 둘러싼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또한 적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자들이 어떤 일을 해도 일반 국민들, 서민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것을 세이초는 점, 선, 면을 이어 하나의 동체로 만들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얼마 전 미국에서 젖소 한 마리가 광우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한국 정부가 과거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달리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미국에 가서 조사를 한다고 한들 무엇을 얻어올 수 있었나. 미국 측은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그들로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우리에게 알려줄 뿐이다 ㅡ 꼭 미국(강대국)이 아니라 해도 한국 내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라! 지갑 속에는 29만 원만 있다는 전 씨의 '평화의 댐', 장영자 사건, 이승만 정부의 보도연맹 사건, KAL 기 격추 사건, 소설로도 잘 알려진 이휘소 박사의 죽음, 선거 때마다 발생하는 무효표와 개봉된 투표함…… 우리는 이렇게 '국가와 권력' 혹은 '국가의 권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뭐, 비단 이것 하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지만 말이다.



사족)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_ 시모야마 국철 총재 모살론」의 현장은 기타센주(北千住) 역과 아야세(綾瀨) 역 사이인데, 그 바로 옆은 가메아리(龜有)이다. 그리고 시모야마 총재가 실종되기 이삼일 전부터 「시모야마를 죽여라!」, 「시모야마를 처벌하라!」는 전단이 신주쿠(新宿) 역 주변에 붙어 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가메아리와 신주쿠에서 각각 반년씩 살았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