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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홍신문화사, 2012)


천국의 열쇠 - 8점
A. J. 크로닌 지음, 김성운 옮김/홍신문화사


「인은 오직 정신 하나만으로도 신앙 한가운데에 계속 머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정신은 항시 깨어있어야 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앙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어떤 자명한 것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고, 그리하여 신앙 자체보다 지속적으로 신앙 속에 있으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막스 피카르트가 그의 책 『침묵의 세계』에 쓴 말이다. 나는 이 문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에서 나타나듯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성채' ㅡ 그의 다른 작품 『성채』의 주인공처럼 ㅡ 를 좇는 인간의 세계관과 어렴풋이 닿는 것 같기도 하다……. '이성이 먼저인가, 아니면 신앙이 먼저인가?' 이 물음은 '인간이 먼저인가, 아니면 신이 먼저인가?' 라는 의문과 궤를 같이 한다. 소설 속에서 어린 시절 종파가 다른 부모님을 보며 「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놔두지 않는 것일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프랜시스의 독백은 종교와 믿음이라는 화두의 속병에 접근하고 있다. 나는 오컴의 '하나님이 가진 전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보편자는 오직 정신 속에서 사유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하는 주장에는 찬성한다. 그런데 소설에는 개개인의 사유를 한 가지 형태로 끄집어내고 집합시켜 사람들을 오도하려는(이를테면 '마리아의 샘')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불[火]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은 오히려 어두컴컴할 때가 아닌가? 수천 개의 말이 뒤섞여 마치 신비의 경이로움처럼, 혹은 수천 개의 번잡함으로 인해 침묵하지 못하고서 뭔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혼탁한 한숨처럼, 크로닌은 프랜시스라는 인물을 내세워 과연 자기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명제를 그리려고 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