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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열린책들, 2012)


오래오래 - 8점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들야들하다고 말하겠다(설명할 길은 없고, 그저 '야들야들해 보이는' 첩어가 생각났는데 그게 '야들야들'이다) ㅡ 책을 덮은 후의 내 사고가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청교도적 환상이었구나, 하는 결론으로 흘렀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가브리엘의 오랜 사랑인 빨간 후드 여인을 놓고 격투를 벌일 때 그의 주먹이 왜 상대의 눈과 코만을 향했는지 생각해보라. 아마도 소설의 어느 사건을 둘러봐도 이만큼 격정적인 장면은 없겠지만(섹스할 때? 흠, 그렇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 것이다) 거웃의 덤불숲 앞에서 후퇴하고 공격하고 논쟁하고 휴전하는 상설시장 같은 리듬이 어디에 또 있을지를. 원래부터가 나는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오래전 결혼한 사이인 게 분명한, 소싯적 부부란 공동명의를 사용한 사람들의 정신구조를 볼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경탄할 때가 있다. 『오래오래』와 같은 경우가 그러한데 적어도 나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진 않다. 아내를 배신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파트너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게 복잡하고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ㅡ 「두 집 살림하는 것도 머리가 좋아야 해!」 뭐, 어쨌든 우리의 가브리엘은 전설의 아이를 만들기 위해 전설적인 정원에서 전설적으로 행해진 한편으론 어처구니없이 추락하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처럼 사랑의 방향을 바꾸었다. 부빙(浮氷)마냥 영원히 한곳에 서있을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것도 정신없이 널브러지거나 웅크린 채 어깻죽지를 비벼대면서. 이 유쾌하고 불쾌한 사랑은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썩고 문드러지고 끔찍한 쇠약을 맞이해도 그칠 줄을 모르는데, 어느 누가 비열한 본능이라고 분노하며 손가락질하겠는가? 「낮에 감히 소동을 벌이지 못하는 사람은 밤거리를 걸어야 한다」고, 셰익스피어가 괜히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왕」) ㅡ 여기서는 다른 맥락이려나? 그럼 어쩔 수 없고……. 차가운 두뇌에서 증기가 응결되어 감각의 통로가 차단되는 것처럼, 그들도 좀 여유를 가졌으면 했다. 이건 특히 가브리엘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여간 자발스러운 게 아니니까. 작가가 <차를 마시며 배우다>란 장(章)을 중심으로 거푼거푼 산책을 했듯 그도 그래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파리 식물원에서 그녀의 손에 손가락을 갖다 댄 그 '움찔'이란 반응 이후 그가 보여준 행로는, 그나마 클라라와 앤이라는 소담스럽고 안정된 산맥으로 인해 조절되었으니까 말이다(그래서 난 사실 엘리자베트보다 두 할마시들이 더 좋다니까). 켜켜이 쌓인 사랑의 일기를 넘겨보려면 때로는 가만히 앉아 침전하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다. 누구도 이 소설 같은 사랑을 당해낼 재간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