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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영원의 아이(전2권)』 덴도 아라타 (북스피어, 2010)


영원의 아이 - 상 - 8점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칠드런(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정된 의미가 아닌)의 이야기다. 그리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싶다 (...) 의식 밑바닥에, 실은 '네가 열심히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라는, 분풀이와도 비슷한 분노의 감정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 봐, 난 이렇게 하고 있어. 어때, 칭찬해, 인정하란 말이야」라는 료헤이의 상념이 이승환의 노랫말 ㅡ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가족」) ㅡ 을 만나면 참 우스운 꼴로 변하기도 한다. 실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이 윌에게 했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It's not your fault.」 아이와 마찬가지로 부모 역시 빈약한 존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그 '련(憐)'의 마음이면 된다.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된다. 그런데…… 세상의 가치에서 떨어지면 살아가는 게 괴롭지 않을까? 정말 어깨에서 힘을 좀 빼면 훨씬 몸이 가벼워질까? 다음은 이름의 한자, 이야기 속의 역할, 소설의 내용도 다르지만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진 '나오코'가 한 말이다.





肩の力を抜けば体が軽くなることくらい私に もわかっているわよ。そんなこと言ってもらったって何の役にも立たないのよ。ねえ、いい? もし私が今肩の力を抜いたら、私がバラバラになっちゃうのよ。私は昔からこういう風にしてしか生きてこなかったし、今でもそういう風にしてしか生きていけ ないのよ。一度力を抜いたらもうもとには戻れないのよ。私はバラバラになって ㅡ どこかに吹きとばされてしまうのよ。


어깨 힘을 빼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쯤은 나도 알아. 그런 말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구. 알겠어? 내가 지금 어깨 힘을 뺀다면 나는 산산조각이 난단 말이야. 난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한번 힘을 빼고 나면 다신 본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구. 난 산산조각이 나서 어딘가로 날려가 버리고 말 거야.


ㅡ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상대방의 형기가 몇 년 늘어난다고 해도, 그로 인해 피해자가 치유 받는다는 건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 작품 속에서 료헤이가 강하게 말하던 '받은 상처가 어떻게 취급되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흡사 카라마조프의 세 아들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 소설은, 상당히 많은 논의들을 준다. 「학대는 학대를 낳는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는가?」, 「상처가 있는 자들만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가?」, 「이 세계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하는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 라면, 앞의 물음들에 대한 정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덴도 아라타는 『영원의 아이』에서의 '아이'에, '子'가 아니라 '仔'라는 한자를 쓴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仔'는 동물의 새끼에 사용되는 한자다. 소설에서는 햄스터가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 햄스터 새끼는 제 부모에게 어떤 식으로 응석부리고 있었는가? 갓 태어나서 아직 눈도 안 보이는데 어미의 젖을 빨아먹으려는 필사적인 모습을 (...)」 내가 보기에 이 양반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독자를 꼭 한 번은 울리고 마는 고약한(!) 재주가 있는데, 이번에는 그가 말한 '어떻게든 부모를 찾는 새끼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덧) 『영원의 아이』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와타베 아츠로(渡部篤郎)가 쇼이치로 역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