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세 개의 그림자』 시릴 페드로사 (미메시스, 2012)


세 개의 그림자 - 8점
시릴 페드로사 지음, 배영란 옮김/미메시스


이드오프(trade-off)라고 하면 맞아죽을지도 모른다. 『세 개의 그림자』는 무척이나 거대한 담론이기에, 기괴하고 슬픈 생명과 사랑의 오마주니까, 한갓 얄팍한 용어 따위로, 게다가 주제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말 꾸밈새로 오독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하잘것없는 나무도 아니고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도 아닌 세 개의 그림자 ㅡ 로댕의 '세 그림자' 혹은 '세 악령'과 과연 연관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ㅡ 는 결국 사랑스런 아이를 데려가고, 리즈는 루이에게 「두려움과 분노만으론 우리 아이를 지킬 수 없다 (...) 아이는 곧 우리 곁을 떠날 거고, 난 준비가 됐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 개의 그림자』는 부모의 사랑에서도 특히 부정(父情)을 하나의 줄기로 삼아 여행하고 있다. 멀리 떠나기 위해 오른 배에서 루이(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대비되는 한 노예의 애절한 눈빛을 모른 체했다가 나중에 끕끕수를 당하고 ㅡ 아들 조아킴만 지켜낸다면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아버지의 맹목적이고 쌉싸래한 눈물(누가 멋진 재킷을 입었는지도 그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ㅡ 머지않아 배는 침몰하게 되는데, 살기 위해서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여기에 어마어마한 메타포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어느 노인의 말에 그는 조아킴을 안고 거센 바다로 뛰어들고 만다. 그리고 훗날 악마와의 거래로 자신의 심장을 내어준다. 오로지 조아킴을 위해서……. 그런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심장을 잃고 괴수가 되어버린 아버지로부터, 아들은 더 이상 그림자들이 무섭지 않다며 그의 단단한 주먹 속에서 빠져나온다. 친구의 아들의 죽음에서 이 작품의 주제를 구상했다는 작가의 말로 보건대, 이것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나 성장통이 아닌 사랑의 소멸로 보인다. 그리고 훗날 '세 그림자'는 아들 조아킴에게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아버지 루이의 심장을 돌려주게 한다. 「조아킴… 이제 가야 한다.」 「네. 아빠, 안녕히 계세요.」 죽은 아이는 스스로 제 아비를 살리고 떠난다. 그런데 조아킴은 정말로 아버지에게서 사라지는가? 아니면 되살아난 루이의 심장에, 다시 뛰게 된 아버지의 가슴속에 숨어있다고 해야 할까?



덧) 그들이 배를 타기 전의 에피소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며 배표를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 했던 장사치에게 조아킴은 「그 아저씨 '죽이고' 싶었어요!」라고 중얼거리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두 번째 읽는 순간 이건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외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