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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11)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 10점
맥스 브룩스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이 배척(빠루, crowbar ㅡ 이하 '빠루')으로 당신의 눈구멍을 찔러 주리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이놈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세상에! 대체 어떤 가정집에서 빠루를 갖춰 놓고 있단 말인가. 브룩스가 지적한 대로 목공용 망치나 손도끼는 사용 거리가 극히 짧아 좀비를 뭉개버리기엔 위험 부담이 있으니 답은 역시 빠루밖에 없는데. 야구 선수들이 배트에 하는 것처럼 반창고 같은 것을 양쪽 끄트머리에 지그재그로 감으면 그립감도 좋아질 것 같다 ㅡ 집에 있는 알루미늄 배트는 한두 번 휘둘러도 금세 휘어질 것 같아 포기하기로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빠루다. 끝이 휜 노루발로 눈을 찌르면 뇌까지 직접 닿는다고 하니까(좀비를 죽이는 방법은 뇌를 파괴하는 것뿐이란다). 석궁이나 활, 총, 폭발물, 화염방사기(맙소사) 등은 당최 흔하지 않으니 애초에 생각하지 말자. 내 집은 ㅡ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집일 테지만 ㅡ 아파트 8층이므로 접근성이 좋은 1층보다는 덜 위험하다(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어느 층이든 1층보다는 안전할 것 같다). 게다가 일단 공동주택의 이점은 머릿수로 녀석들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킨 후 아래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오는 놈들을 빠루 등을 이용해 가격하면 그야말로 이곳은 최고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이 장면이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면 영화 《친구》에 나오는 극장 계단 신을 참고하라). 너무 휘둘러 팔이 아프다면 옆집 남자와 교대하면 되겠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 방법 외에 딱히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절감한다. 예비역이 현역만 못하다는 것을. 그러나 낙심하지 말자. 누가 알겠나. 마침 휴가 나온 까까머리 군인이 몇 층인가에 있을지(그에겐 참 불행이겠다만). 역시 언제나 군인은 쓸모가 많은 법이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물자의 보급도 꽤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방용 칼, 손전등, 물(단수가 안 된다면), 불(가스 공급이 원활하다면), 간단한 구급약, 망치를 비롯한 조그만 연장들(녀석들이 올라오는 계단 위에 본드로 못을 세워 둔다면!), 소화기(아파트니까 당연히 있다), 알루미늄 배트(희한하게도 이것을 구비해 놓은 집은 의외로 많다), 기타 등등. 이게 다인가? 중요한 걸 빠뜨렸다. 장기전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식량 조달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옥상에 채소밭이라도 일구어야 하나? 게다가 변수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올 수 있는데, 내부 갈등이 그것이다.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이상한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나는 음악을 자주 듣는데 행여 좀비들의 걸음이나 크르륵 하는 소리가 음악에 묻힌다면 어떡하지? 잠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교대로 불침번을 서야 하나? 만에 하나 좀비를 단 하나라도 죽였다면 시체 처리는? 브룩스는 태우거나 묻으라고 했지만 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 안에서 어떻게 태우고 어떻게 묻는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휘발유를 뿌리고 한 발 물러서서 성냥을 그어 던지면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성냥을 누가 갖고 다닌단 말인가(지포 라이터를 던지기엔 너무 아깝다). 휘발유는 또 어떻고. 뭐, 어쨌든 내가 사는 동(棟)은 총 75세대가 거주하니까 성냥이나 휘발유 한두 통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하기 전에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체력이다. 이건 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일단 내 방에는 가볍긴 하지만 8kg짜리 덤벨과 문틀 사이에 고정시켜 둔 철봉이 있다. 이걸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생각해보니 거실에 라텍스 밴드도 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안성맞춤이기도 하고. 자, 이제 준비가 웬만큼 된 것 같다. 잠깐만. 근데 좀비는 언제 나타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