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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스킨』 니나 자블론스키 (양문, 2012)


스킨 - 8점
니나 자블론스키 지음, 진선미 옮김/양문


스 피카르트는, 인간의 얼굴은 침묵과 말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이라며 '인간의 얼굴은 말이 튀어나오는 벽'이라 했다. 의미하는 바는 조금 다를지라도 인간의 피부색 역시 동일하게 작용한다. 하나의 에코르셰처럼 언제나 같은 이미지를 느껴야 하겠지만 실제로 인간은 그렇지 않으니까. 피부가 화석과 같이 불변의 모양으로 남는다면 좀 달라지려나……. 인간의 피부색은 자외선의 강도에 따라 변했다. 당연히 지리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인류의 분열이 왔다. 우리는 여기에서 민족을 가르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마저 연결시킬 때도 있다. 오래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외국인을 등장시켜 일종의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하얀 피부와 검은 피부를 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휴대 전화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의 반응을 보는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전자의 경우는 7할 이상 성공했고 후자는 2할에서 3할 정도에 그쳤었다. 다시 말해 백인이 휴대 전화를 빌리려 한 경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70% 이상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내주었다는 얘기. 희한하게 묵자의 『겸애』가 이를 기가 막히게 꼬집는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남을 자기 몸처럼 아낀다면 (...) 남을 내 몸처럼 본다면 (...)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묵자의 말대로 사랑이 정답일까? 답은 아닐지라도 초석이 될 수는 있다. 타인을 편견 없이 대하는 것. 이 책으로 돌아가자면 '타인을 피부색으로 구분하지 말 것.'



앞서 말했듯 피부색은 자외선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의 살갗은 멜라닌 양을 가감하는 형태로 이에 적응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연선택을 통해 타협한 결과가 피부의 멜라닌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적도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짙은 피부는 ㅡ 자외선이 매우 강하게 비치는 지역에 살기 때문에 DNA와 엽산이 손상되지 않도록 피부의 멜라닌 양이 최대한 증가한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지금 우리는 일부러라도 피부를 햇빛에 노출시켜 어두운 색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의 피부는 아주 느리지만 매일같이 변화한다. 그러나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변화들, 소름이 돋거나 손에 땀이 나거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하는 극단적인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므로 피부색도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 ㅡ 이 글 처음에 썼던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감정을 나타내는 신호이며 상대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피부끼리의 접촉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감정 변화에서도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 경우는 사회적인 양태다. 우리가 피부에 가하는 색깔이나 모양은 자신의 가치, 열망, 개인적 경험을 표현해준다. 우리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취한 채 전혀 꾸미지 않더라도, 피부는 늘 사회적인 의사를 나타낸다(p.226). 그러나 이것이 '피부로 인한 그릇된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피부는 우리의 자아상과 사회적 중요성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피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고, 특정 집단과 자신의 관계가 어떠한지 선언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낀다. 인체를 덮고 있는 외피가, 자칫 미개한 편견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