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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금융 부식 열도(전2권)』 다카스기 료 (펄프, 2012)


금융 부식 열도 1 - 8점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펄프


니토모 야스유키의 『돈이 울고 있다』란 만화를 아는지. 엘리트 은행원이 대부업체 지점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만화인데 이 『금융 부식 열도』와 궤를 같이 하는 접점은 '돈'이 되겠다. 자본주의의 오래된 테마는 역시 돈과 금융이니까, 당연히 돈의 움직임과 그것이 어디서 머물고 어디가 종착역인지를 따라가는 그림은 언제나 흥미롭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주제는 부정한 돈의 흐름과 변제에 관한 것이겠고.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잃어버린 10년'이건 '잃어버린 20년'이건 간에 거품경제로 인한 자산가격의 빠른 성장 속도는 원칙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거품이 끼고 말았다. 언뜻 보면 그야말로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인데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관찰해보니 결국 '시체꽃'이었다는 뭐 그런 얘기가 되려나……. 『금융 부식 열도』는 딱딱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부식'을 타이틀에 넣음으로써 거품도 거품이지만 거기서 파급되는 '돈의 맛'을 보여주고 있고 ㅡ 배금주의, 더티 머니, 유불리를 따지는 괴수들이 한데 모여 총체적 난국이란 퍼즐의 조각으로 분(扮)한다. 일단은 다케나카라는 주인공이 있다. 이 평범한 은행원의 시선을 빌려 일본의 거품 끼고 부식된 경제를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절대 권력에 가까운 파워를 지닌 사토라는 교리쓰 은행 비서역(도쿄대 출신으로 설정)과 출신대가 달라 어디든 갖다 쓰고 버릴 수 있는 부하직원의 인상도 묻어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은행장의 딸 스캔들로 시작되는데, 후자의 이유가 없다면 굳이 교리쓰 은행 도라노몬 지점 부지점장인 다케나카란 인물을 사토가 캐스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스기모토가 사토의 심복인 스기모토가 다케나카의 입행 동기라는 점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소설은 다케나카가 본점 총무부 주임 조사역으로 발령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다케나카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100명 가까이 되려나) 소설 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다섯 명 안팎이다. 이들을 줄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케나카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발령에 그는 은행 주주총회에서 여론을 장악하는 총회꾼 ㅡ 주주총회에 참석해 금품을 목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거나 돕는 소액주주 ㅡ 들을 전담하는 '섭외반' 근무를 하게 된다. 총회꾼들 중에는 조직 폭력단과 우익 단체도 있는데 다케나카에게 내려진 임무는 주주총회를 대비한 스캔들을 막으라는 것. 은행 회장과 그에 줄을 대는 비서역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고민하는 다케나카의 첫 번째 사건은 불법 융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으니 앞서 말한 일본 경제의 총체적인 문제, 거품 경제를 들쑤셔대야 한다. 돈은 회사에의 투자 등 유익한 곳에 쓰이지 않은 채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80년대 말 도쿄의 땅값이 미국 전 국토의 땅값과 맞먹는다는 수치가 나오지 않았던가. 이것이 거품이다. 사람들은 일본의 경제가 성장과 발전의 일로를 걷는 것으로 착각했다. 힘 있는 원맨에 의한 실력행사는 물론이거니와 금융계, 주택 문제, 그와 얽히고설킨 정치적 알력까지. 이 버블이 쉬이 사라질까? 붕괴는 되었지만 잔재물이 남았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거기에 자금을 대주고(부정 융자), 리베이트를 챙기고, 부실 채권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지옥문으로 들어간다(실은 복마전일지도). 작가는 다케나카로 하여금 거물 해결사 고다마와 만나게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ㅡ 고다마는 주인공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그저 박력 있는 인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역시 깨끗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거품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금융 부식 열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태생이 거품이라고 해도 좋다.



기업은 은행주를 매각하고 은행은 기업주를 매각해 주식 시세가 떨어진다. 은행은 실질 이익의 감소로 인한 경영 부진에 빠지고 은행의 신뢰도 저하는 또다시 은행주의 매각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금융채 구제에 혈세를 사용할까? 대형 은행을 구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할까? 아니면 돈 자체를 거세해야 이 세계가 편해질까? 썩어빠진 관료주의와 맞물린 부식된 경제 블랙홀이 『금융 부식 열도』를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