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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북극 허풍담(1~3)』 요른 릴 (열린책들, 2012)


북극 허풍담 1 - 10점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열린책들


『돌격!! 크로마티 고교』, 『GTO』, 『오늘부터 우리는』을 보며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릴 때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친놈처럼 뭘 그렇게 꺽꺽대고 있냐.」 그 말씀을 들을까 두려워 혼자 있을 때만 읽어야 했다. 그렇게 웃다가 눈물을 흘리며 책을 덮었는데 벌써 3권 째를 다 보고 있었고, 이 양반 이거 안데르센이나 이솝처럼 이 세계의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을 기센데, 하는 생각이 들어 기가 막혔다…….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 사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표지 뒷면 카피에 있는 '북극 시트콤'이란 문구를 나는 책을 다 읽고서야 이해했고 3권 이후(4~10권)가 나올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기다려야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우스우냐하면,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짐짓 진지한 얼굴로 엉뚱한 소리를 할 때의 그런 종류다. 분명 처음에는 조팝나무 씨만 한 크기에 불과했다. 근데 이게 제정신이 아닌 사냥꾼들에서라면 달라지는 거다. 일단 1권에서 고추 달린 놈들밖에는 없는 얼음덩이 위에 난데없이 사과 도넛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여자 엠마가 등장한다. 엠마, 이 발칙한 계집…… 이라고 하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그린란드 북동부 남자들을 들었다 놨다 난리굿을 피운다. 그런데 2권에 가서는 가관이다(불쌍한 피오르두르……). 이건 글로는 도저히 쓸 수 없다. 예컨대 이런 거다.





레우즈는 이곳 북극에 '문명'을 가져왔다. 그는 기지에 딸린 오두막 하나를 허물어 그 널빤지를 가지고 화장실을 만든다. 쓸데없이 완곡한 레우즈는 함께 사는 동료 시워츠에게도 화장실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레우즈의 것이기 때문에(이런 심리는 대체 뭐야?). 시워츠는 화장실을 쓰기 위해 ㅡ 맙소사, 북극에선 엉덩이 사이로 강한 바람을 맞으며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대체 왜! ㅡ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씩 양동이를 비우게 된다. '똥'이 담긴 양동이를. 그런데 이 양동이란 것이 꽁꽁 얼어 있으니 거실에서 화덕의 열기를 쬐어 덩어리 가장자리가 녹아야만 해변까지 가서 버릴 수가 있는데, 일은 거기서 터져버린다. 시워츠가 양동이를 막 불 위에 얹었는데 묶어둔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그것은 곰을 보고 짖는 소리였음이 확실했기에 시워츠와 레우즈는 그대로 총을 들고 뛰쳐나간다. 그들은 보란 듯이 곰을 잡아 집에 돌아왔다. 그때 이미 양동이 속에서 탁탁 튀는 소리가 나고, 내용물은 거품을 내며 양동이 밖으로 천천히…….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지. 왠지 시워츠만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아 미안한데, 이것도 시워츠의 이야기다. 어느 날 그가 썰매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얼음덩이 사이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정말이지)영악한 곰 한 마리가 그가 지나가는 순간 썰매 위로 몸뚱이를 날린 사건이다. 썰매는 박살났지, 개들은 썰매 끈에 엉켜버렸지, 아연실색한 시워츠는 냅다 도망치고 만다. 분노에 찬(!) 곰은 시워츠를 따라 전력질주 하는데, 그는 죽을힘을 다해 뛰면서 방한복을 벗어 옆으로 던져버렸다. 곰은 잠시 멈추고 방한복에 찝쩍대다가 다시 시워츠를 쫓았다. 시워츠는 이미 셔츠를 벗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곰이 가까이 오자 셔츠를 옆으로 던졌다. 곰은 이번에도 셔츠에 눈이 팔렸다가 다시 그를 향해 질주한다. 그렇게 시워츠는 사냥 오두막에 도착할 때까지의 100m 되는 거리를 스트립쇼를 하며 달아난다. 이렇게까지 곰이란 녀석이 비상한 머리를 지녔었나. 놈은 시워츠가 들어간 오두막에서 10m쯤 떨어진 바위 위에 엎드리기도 하고 마침내 그가 잠들자 지붕 위로 올라가기까지 한다! 비장한 장면인데도 왜 이렇게 웃음이 나지……. 『북극 허풍담』은 전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걸 대체 몇 번이나 울면서 봐야 한단 말이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까지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젠장! 이 빌어먹을 더럽게 웃긴 .txt를 .avi로도 만들어줘!」



덧) 아래의 셔츠는 『북극 허풍담』 출간 기념으로 제작된 거라는데, 운 좋게도 얻어내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