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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뿔』 조 힐 (비채, 2012)


- 8점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비채


저 패닉의 「뿔」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간지러워서 뒤통수 근처를 만져보니 뿔이 하나 돋아났네, 이쯤은 뭐 어때 모자를 쓰면 되지 뭐, 직장의 동료들 한마디씩, 거 모자 한번 어울리네, 어쩐지 요즘엔 사는 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거워……. 이에 반해 조 힐에게 돋아난 뿔은 위치도 다르거니와 게다가 패닉의 경우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어쩐지, 빌어먹을 『말벌 공장』 같은 책이다. 아, 뭐 그렇다고 정말 '빌어먹을 뭣 같은 책'이란 건 아니고. 그럼 뭐가 문제냐. 종교적 해석? 프로이트 대입? 상징에 또 상징? 맙소사. 이 소설을 읽으려면 정신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다. 주인공 이그가 태생적으로 트럼펫을 불 수 없게끔 설정된 상황부터 왜 하필이면 뱀이 등장하는가 하는 것까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까. 자, 시작은 패닉의 노래와 같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뿔이 돋아나 있다. 양쪽 관자놀이에. 환상도 아니고 당최 사라질 기미도 없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성당엘 갈까? 아니면 병원? 여기에서 작가가 구성해놓은 것 중 하나가 드러난다. '뿔의 힘'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품었던 추악한 생각들을 고해성사하게 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이그는 뿔이 돋은 시점부터 그의 애인 메린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나서게 된다. 역자가 '옮긴이의 말'에 간략하고도 섬세하게 써놓았지만, 이그는 물에서 한 번, 불에서 한 번 태어나고 죽는다. 어릴 적 쇼핑카트를 타고 내려오다가 강에 빠지고 훗날 불타는 차 안에서 다시 한번 그 강에 빠져서 말이다 ㅡ 붉게 달아오른 피부로 숨을 들이쉬며 물속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크랭크》의 영원한 불의 화신, 체브 fu**in' 첼리오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소 신파극으로 흐를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거기서 갑자기 확 꺾여버린다. 모든 사건에는 여자가 얽혀있다고 하듯, 『뿔』에서의 여자들 ㅡ 메린과 글레나 ㅡ 은 이그를 유혹에 빠뜨렸지만 사랑 또한 보여주었으므로(종교적 의미부여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어쨌든 외모가 변했다고 해서 카프카를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이 소설 자체를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 대체 어디서부터 글러먹은 건지는 차치하고라도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이그가 악마가 돼버렸다는 사실 자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포인트. 그가 악마로 변하기 전 이미 그는 악마란 이름으로 불리고 만다는 것. 악마로 변하자 사람들이 그를 악마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먼저 악마라는 부름이 있은 후에 변하는 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악마가 되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기 전부터 이미 위험한 짐승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서 이 작품을 두고 '하이테크 롤러코스터'라고 한 것처럼 이그라는 위험한 짐승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그야말로 불[火]과 함께하는 황홀경을 맛볼 수 있는데, 그가 맞는 두 번(혹은 세 번)의 죽음에 이르면 불은 이상하리만치 신성하게까지 보인다. 『뿔』에서 사람들의 죄는 처음에는 자신의 것이었다가 나중엔 다른 사람의 죄로 변한다. 우리 마음이 지향하는 작용은 순수하지 않으니까,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메커니즘이다. 다시 말해 '존재의 구멍'이 더 이상 인간의 순수한 자유로 정의되지 못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