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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20세기 사상 지도』 대안연구공동체 (부키, 2012)


20세기 사상 지도 - 8점
대안연구공동체 기획/부키


의 힘이 역사를 만든다며 계급투쟁을 부르짖었던 맑스는 그것 때문에 보드리야르로부터 비판당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철학책을 (두서없이) 읽다보면 '지금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가 분명히 있다. 불한당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유유히 사라지는 히어로를 만끽한 다음 영화관에서 나올 때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수많은 은유로 점철된 소설이나 시에 비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접하려면 끈기가 필요하다. 아주 약간의 끈기가. 『20세기 사상 지도』는 연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였다. 그래서 뜬금없이 벤야민까지 등장한다. 이로써 어떤 문제를 보는가, 에 대한 추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 더 괜찮다고 생각한 점은 이 양반들의 국내 번역본에 대한 코멘트가 붙어있다는 것. 다정도 병인 양, 친절함이 독이 되지 않도록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 책을 포함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에 대하여 그것을 읽을 자유와 읽지 않을 자유가 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이다. 그에게 인간은 본질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본질을 새롭게 만들 수 있고 도 만들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내가 있어야 할 것으로 있는 이 미래가 단순히 존재를 넘어서 존재에 대해 현전할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는 엄밀하게 과거에 대립한다. 확실히 과거는 내가 나의 바깥에서 있게 되는 존재다. 그러나 과거는 내가 그것으로 있지 않을 가능성이 없는 존재다.」 그의 저작 『존재와 무』에 나오는 말이다. 정말이지 난해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알튀세르 역시 사르트르와 함께 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옹호했다. 여기에 반감을 드러냈던 자가 바로 알튀세르다. 그가 인간이란 주체는 사회적 구조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까닭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는 것 말이다. 희한한 것은 알튀세르에게 있어 주체라는 범주는 이데올로기와 분리할 수 없게 되는 것인데, 더 뜨악한(!) 것은 그가 인간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고도 보았기 때문이다. 역동적인 코나투스(conatus)를 타고난 사회적 원자들인 인간을 꿈꾸는 것, 사르트르와 알튀세르는 대척점에 서있으면서도 그 두 개의 점을 죽 이어 만든 선 위에 함께 존재한다. 사실 사르트르건 알튀세르건 뭐가 중요하겠는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20세기 사상 지도』를 읽을 수도 있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ㅡ 이 세계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느낄 수 없도록 재단한 것이다 ㅡ 20세기 역시 인간의 시대였다고 본다면, 과거로 소급해 올라가 우리가 과거에도 인간이었고 앞으로도 인간으로 살아갈 것임을 확실히 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보르헤스의 에세이 ㅡ 정확하지 않은 기억력에 의하면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ㅡ 에 나오는 동물 분류법처럼 언어(인식과 관념), 도구(아트 혁명, 노동과 여가), 정치(자아, 주체, 사회), 윤리(욕망의 꽃, 윤리)라는 네 가지 틀로 엮인 흥미로운 사상들을(직경 2 또는 3센티미터에 달하는 '알렙'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우주의 공간을 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