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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열린책들, 2009)


우리들 - 8점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열린책들


직화된 사각형. '개인'이란 없는 투명성의 유리. 대오를 이루며 걷는 발들. 자유의 노란 이미지. '나'를 함몰시켜 삭제할 때 발생 가능한 '우리'와 '조직'과 '조화'와 '행복' ㅡ 이 『우리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오웰의 『1984』에 비해 날것의 느낌이 들며 거칠다. 소설 속의 '단일제국'에서는 비(非)유클리드적이거나 달리(Salvador Dali)의 「기억의 집요함(The Persistence of Memory)」(1931)과 같은 것들은 '정신 이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달리는 「기계적인 물체들은 나의 적이 되어야 한다. 시계의 경우 부드러워져야 하거나, 전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녹아내리는 치즈를 보고서 흐물흐물한 시계를 그리지 않았던가……. D-503의 기록물을 보면 '시간 율법표'나 '은혜로운 분'으로 대변되는 의식과 무의식, 환상과 리얼리티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드러난다. 음식을 삼키기 전 입 안에서 50번씩 씹고 나서 넘기는가 하면 이성과의 섹스는 '등록'의 형태를 거쳐 실시된다. 그런 통제 하에서 D-503은 I-330이란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를 이성적으로는 거부하지만 감성적으로는 휘둘리며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성은 0의 오른쪽으로 전진하여 360도 돌아 다시 0의 왼쪽에서부터 되돌아 왔기 때문에 +0 대신 -0이 있는 건가?(p.116) 『우리들』은 그야말로 네그엔트로피의 정점을 찍고 있으며, 시종일관 지속되는 이야기 속의 노란 이미지는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공기를 찾지 못해 죽고 만다. 그것은 곧 D-503과 I-330의 결말의 표지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꼭 체제에 대한 것도 될 수 있지만, 개인의 생활이나 예술 전반, 조금 크게는 제도란 것 자체에 걸쳐서도 적용될 수 있어 보인다. 달리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결말로 ㅡ 현실의 양식과 표준화를 넘어 ㅡ 가지는 못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