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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제3제국』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2013)


제3제국 - 10점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열린책들


치와 전쟁이란 명제라면 우리는 이미 소설 『나치와 이발사』나 영화 《버디》와 같은 매개체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로 인해 충분히 악마 같은 소설과 영화들을 접했으면서도 늘 (어떤 의미에서건) 전쟁과 상흔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ㅡ 인간이 꿈의 실현을 욕망한다지만 실은 그 욕망 자체를 욕망하고 있는 거라면 어떨는지. 그런 측면에서라면 소설 속 찰리의 대사가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빤한 일일 것이다. 그는 친구의 집을 찾다가 작고 까만 개를 치어 죽인다. 우도는 전에 봤던 개인지 유기견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지만 찰리의 대답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차에서 내려서 자세히 살펴봤거든. 같은 놈이었어.」 우도의 내면은 시종일관 간섭받는다. 그는 출구를 찾았다고 결론지으려는 찰나 복마전에 빠진 것만 같다. 내가 보기에 그는 인텔리겐치아란 총을 든 겁쟁이마냥 입놀림으로 혁명을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인데, 체호프가 망쳐 버린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총임에 다름 아니다. 꼭 모든 총이 발사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렇지 않은가? 발사되지 않는 총도 있을 것이고, 발사되지 못하는 총도 있을 터다. 그러나 이 우도라는 인간은 스스로가 인텔리겐치아도 아니고 혁명을 하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행동하는 투쟁가도 아닌 바에야 이런저런 불평을 할 만한 계제도 아닐 것이며 실제로 그는 앞으로 발사되지 못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으므로. 주인공 우도 베르거와 페달보트 임대업자 케마도의 아귀다툼은 정말이지 난센스라고 봐도 좋다. 그것은 홀로코스트나 크리스탈나흐트와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 하다못해 모든 세계가 다른 세계를 인용하듯 인간이란 족속도 ㅡ 인간의 기억이란 녀석도 ㅡ 하느작하느작 자신을 집단에 인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강자가 된 집단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 어떻게든 그 집단에 속하려고만 하고 있으므로. 그야말로 반쪽짜리 세계를 보는 관념 운동 같은 것이다. 우리의 우도 베르거는, 그 스스로가 사물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것들이 자신을 날카로이 겨냥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먹물로 쪼아대는 타자기 같은 해변이 있고 거기 끝에는 절대 맞힐 수 없도록 고안된 십자말풀이가 있는 것만 같다. 즐거이 풀 수 없는, 정교하게 짜인 시간표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많이 즐기고 가.」 우도는 (영원히 그래야 할 것처럼 보이는) 케마도의 해변에서 이상야릇한 말을 듣는다. 오늘도 무사히? 과연 무엇을? 더군다나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 본 우리라면 다음의 문장을 기억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탐욕, 파벌 싸움, 위선, 배반, 잔혹성, 분노, 광기, 증오, 시기, 정욕, 적의, 야심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악의 결과인 무수한 음모, 반란, 살인, 대량 학살, 혁명, 추방으로 가득하오……. 나는 당신네 원주민들 대부분은 땅 위를 기어 다니도록 자연이 허용한 작고 추악한 해충 중에서도 가장 해로운 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소.」 예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 꼭 잃어버린 탄피마냥 이상한 곳에서 어슬렁거리기나 할 줄 아는 자들. 그들. 그것. 우도와 케마도가 보여주는 것은 그야말로 항해용 정밀 나침반처럼 가차 없다고 생각된다. 과연 그들은 멱살이 잡힌 채 오늘의 자신에게 경고 사격이 가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기나 했던 것일까? 잔뜩 무뎌진 외제 플라스틱 포크, 자양강장제 병에 담긴 꽁초들, 이런 자질구레한 생활의 각론 같은 것들이 결코 자신의 의자를 빼앗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글쎄,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서 있으면서 자꾸만 타자에 의해 자신이 논해지고 평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ㅡ 에셔의 판화처럼 돌고 도는 탈주와 매한가지다. 누군가 인간 하나가 죽어 나가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는다(김득구와 자코 파스토리우스가 죽은 이유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