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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녹색 고전』 김욱동 (비채, 2013)


녹색 고전 : 한국편 - 8점
김욱동 지음/비채


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시 「이를 잡다(捫蝨)」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거기에서는 이를 잡아 화로에 넣지 않고 땅에 던지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너 역시 붙어살 데 없어 / 나를 집으로 삼은 것이네 / 내가 없으면 이것 없을 것이라> 사람이 집이라는 공간 없이 살아나갈 수 없듯 이 역시 사람의 몸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크기에 관계없이 생명이 있는 짐승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똑같이 불쌍히 여기고 덩치가 큰 짐승에서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하나같이 다 죽기를 싫어하니, 그러므로 개의 죽음이나 이의 죽음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그의 말이다. 저자가 이것을 어떻게 비유하는가 하면,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던 길손을 소극적 생태주의자로 그리고 이규보 자신을 적극적 생태주의자로 옮겨 놓는다. 그러면서 길손을 두고 겉으로는 생태주의의 깃발을 내세우면서도 뒤에서는 이익을 챙기는 개발론자로 보기도 한다(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나오는 휘파람새의 떼죽음을 보라, 그 녀석들은 개발론자 운운할 것도 없이 단지 살충제와 농약 때문에 죽었다) ㅡ 그런데 어디 동물에 대한 차별만 있겠나, 인간이 인간을 편애해 계영배에 담아 구멍으로 내다 버리는 수상쩍은 이때에 이규보를 당황케 한 길손의 논리 또한 쉬 인정받을는지도 모른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신의 책에서 청새치의 뛰어난 가시와 넙치의 기막힌 위장 등을 예로 들며 「이들 중의 어느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보다 더 '진보되었다'거나 더 '고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으나 몸통만 떼어놓고 보자면 '이것이 저것보다 낫다'라는 생각을 꼬집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굴드와 이규보의 생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자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비교를 해 볼 수도 있겠다. 바로 『녹색 고전』 말미에 등장하는 '만물의 영장'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만물의 영장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막아 댐을 쌓고 언덕과 산을 파헤쳐 고속도로를 닦았다. 광물이나 귀금속을 찾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속을 샅샅이 뒤졌으며 강과 바다에 온갖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고형렬의 시 하나를 소개한다. <한강은 강이 아니다 / 그저 우리들의 오물을 실어 나르는 / 컨베이어벨트다> ㅡ '만물의 영장'에서의 영장은 만물을 내다 버림으로써 스스로 영장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