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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박하, 2014)


개 같은 시절 - 8점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박하


의 언는 말[言]이 아닌 눈빛과 몸짓이다. 그리스어로 용감함을 뜻하는 안드레아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이름만큼 용감하긴 한가? <플레이보이> 잡지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모든 형제를 비롯한 가족을 증오하며 남의 음식을 빼앗는가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함을 지르는 그의 아버지이자 개자식인 프란츠 사버 알트만의 앞에서도 용감할 수 있었던가? 제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도둑맞고 알트만 하우스에서 알트만 사료를 먹고 자란 안드레아스. 적절치 못한 비유이지만 《흐르는 강물처럼》의 둘째 폴은 언제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국엔 순응하고 말았고 그에 비해 장남은 교묘히 머리를 굴려 부모의 그늘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언제나 포핸드와 백핸드로 얼굴을 후려 맞고 학교에 가면 회초리 든 선생에게 엉덩이를 내줘야만 했던 안드레아스의 결말은 어떠할까. 형 만프레드와 장난을 치다 실수로 침대에 불이 붙었을 때만 해도 그는 ‘우리, 이 집과 집주인을 태워버리자!’고 굳은 의지를 다졌을는지 모를 일이다.




내 패배의 마지막을 언제나 프란츠 사버 알트만이 장식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한 번 죽음을 경험했던 안드레아스는 그의 아버지만큼은 악랄하지 못한데, 그 스스로가 나서 자신을 가리키는 대략적인 단어들을 나열했을 정도다. 복수, 낙제, 정신병 걸린 여자의 아들, 노동 봉사, 키다리, 곱사등이 새가슴, 가망 없음, 패배자…….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아버지의 집에서 죽든지,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가든지.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이 적인 아버지의 나약함을 간혹 목격하며 아버지 스스로 자신이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이 아들은 제 아버지가 어떻게 고독한 삶을 견뎌냈을지 궁금해 한다. 안드레아스가 동일시하고픈 사람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들 중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넓은 세상을 보여줄 부모가 없었으며 아이다운 인생을 누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안드레아스는 아마도 패배자의 본보기가 되어 삶을 마감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타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개새끼, 내 아버지는 무려 10년을 벌 받지 않고 버텼으나 이 돼지 새끼도 한 번쯤은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깨달아야 했다. 자기가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멸시했는지!



안드레아스가 최후의 저항을 가했을 때 그는 권력자가 되었으며 아버지라는 가혹한 폭군의 몰락을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 것이다. 무릎을 꿇은 채 처량히 앉아있는 아버지를 보고도 그는 여전히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다. 길고 길었던 알트만 하우스에서의 생활과 도둑질,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단어들, 양육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를 모두 뒤로 한 채 안드레아스는 집을 떠나고 만다. 걷지 못하고 뛰면서. 그러고는 타인의 인생을 못 쓰게 만드는 데 재능이 출중한 프란츠 사버 알트만에게서 벗어나 세계 각지를 돌며 제2의 인생을 찾으려 한다. 그는 돈리비의 진저맨만큼 매력적이지도 않고 교활하지도 않다. 아마 그랬다면 악명 높은 알트만 하우스에서부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을 터였다. 섹스에 관한 대부분의 사실들을 조숙한 또래로부터 배운 안드레아스. 아버지란 존재를 통해 분노를 깨우친 아들. 남을 가르치려고 달려드는 자들에게서 도둑질과 저항을 알게 된 우리의 주인공. 그는 끝내 스스로를 아버지와 같이 개자식이라 정의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