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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박쥐』 요 네스뵈 (비채, 2014)


박쥐 - 6점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비채


정 시리즈물의 첫 작품을 건드린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딘지 모르게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인물들, 다소 다듬어지지 못한 호흡, 복잡함을 택하기보다는 과감히 밀고 나가는 거친 박력. 확실히 『박쥐』에서의 해리는 지금까지 출간된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에서와는 달리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 통제 불가능한 느낌에 가깝다. 그가 처음 본 여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꾀는 모습은 후속작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고(그녀들을 낙담하게 만드는 짓거리 역시) 더군다나 낯선 자들과 금세 말을 터 친구처럼 지내는 모양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어리고, 상처를 덜 받고, 무언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다 이런 모양이지ㅡ 물론 상관의 명령에 토를 달고 반박하는 것만은 언제나 불변이다. 여기 『박쥐』에는 제목처럼(!) 애버리진(aborigine; australian origin의 줄임말)이 등장한다. 과거 영국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이래, 20세기 중반 원주민 동화정책을 펴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그네의 아이들을 강탈해 고아원에 방치하거나 농장의 일꾼으로 보내는가하면 백인 가정에 입양시킨 바 있다. 성장한 이들이 바로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다. 이에 (뒤늦게) 정부로 인해 1998년부터 5월 26일을 기점으로 <National Sorry Day>라는 연례행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그들이 정부로부터 집과 돈을 받았다고는 해도, 애버리진의 실업률이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라고 하니 교육 쪽으로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것만 같다(게다가 평균수명도 20년 가까이 짧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란다). 원주민도 그렇다고 백인도 아닌 박쥐와 같은 사회적 대우는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던 차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성화를 밝힌 점화자가 과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2연패를 이룬 캐시 프리먼이었던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육상 선수일 뿐만 아니라 애버리진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과거 멕시코 올림픽에서 보여주었던 블랙 파워 살루트가 '대우받지 못하는 것들에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프리먼의 경우는 비로소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경우라 하겠다(물론 시기적으로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요 네스뵈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두 발을 딛자마자 다소 이채로울 수밖에 없는 애버리진 문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해리라는 주인공이 불완전한 미완의 캐릭터 냄새를 풍기긴 하지만 외려 애버리지 출신인 동료 경찰 앤드류를 거의 전면에 내세우다시피 하고 있으므로. 역자가 후기에 남겼듯 오스트레일리아판 불가촉천민이라는 말은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박쥐』를 잘 설명해준다고 하겠다. 이 소설은 추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긴 하나 그럼에도 애버리진 사회의 문화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그럼 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어떻게 해결되는가. 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이미 접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 『박쥐』를 시작점으로 삼는 것이 제격이다. 탕아에 가까운 주인공의 위대한 탄생이 그려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