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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프랑크 비베 (열린책들, 2014)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 - 6점
프랑크 비베 지음, 박종대 옮김/열린책들


가 이야기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로 시작하련다.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과 상대방의 신분, 소득, 직업, 재능 등 어떠한 사회적 조건도 알지 못하는 가상의 상황ㅡ 즉 자신이 최대 수혜자가 될지 어떨지를 알 수 없으므로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피해의 최소화를 지향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이끌어 공정한 사회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과 윤리라는, 일견 상충되게만 보이는 이 두 가지 개념에 CSR ㅡ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 ㅡ 이라는 윤리적 문제가 간섭하여 현대사회에서의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글쎄, 윤리와 시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화로이 어깨를 같이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 앞에서는 언제나 대답하기 힘든 것이 틀림없다. 책은 2부에서 50개 기업의 윤리 프로필이랄까 일종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책 전체의 80% 분량이다), 놀라운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평점에 별 다섯 개를 주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Netscape)나 선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또한 유럽연합과의 갈등으로 꽤 높은 유명세를 얻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ㅡ 결국 그들은 윈도우즈와 자동으로 결합되던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포기하고 고객들의 편의대로 제품을 고르게 해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빌 게이츠가 설립한 재단을 제외하면 MS는 별점 두 개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는 덧붙임에는 다소 씁쓸해지기도 한다(동시에 인정하는 바이다). 심지어 비베는 글의 끝에서 한 번 더 '확인사살'을 시도한다.





게이츠가 천재적인 사업적 재능뿐 아니라 경쟁 업체들에 대한 무자비한 정책 때문에 그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로써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기업 자체의 문제에 이르렀다. 사실 재단을 제외하면 이 기업은 별점 두 개 정도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 다시 말하지만 별점 다섯 개는 기업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재단에 대한 평가이다.


ㅡ 본문 p.138~140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기업들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읽다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데, 여기에는 한국 기업 삼성도 포함되어 있다. 삼성은 별점 다섯 개 만점에서 세 개를 받았다. 분명 삼성은 세계에서 성공적인 기업의 모범처럼 보인다. 비베는 이런 삼성을 가리켜 종종 '요새'로 표현되기도 하는 삼성의 경우 이런 성공의 그늘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일가가 그룹을 운영하는 재벌 기업의 전형, 불법 정치 자금 제공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곧 특별 사면된 이건희 회장, 최근 영화화되기도 한 산재에 대한 언급 등은 다시 한 번 혀를 차게 만들지 않던가. 비베는 삼성이 대체적으로 국제적 기준을 지키려는 인상을 주고 있고 공개적으로 알려진 비난 또한 제한적이라는 점을 들어 별점 세 개를 주었다고 적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보기에 삼성은 외려 국제적으로 비치는 인상보다는 국내 쪽에서 더욱 '악명'이 높은 것만 같다. 그저 이윤을 추구하는 대기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일까. 최근 어렵사리 개봉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자. 삼성의 캐치프레이즈인 '또 하나의 가족'을 비꼬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멍게'가 될 것이다. 멍게는 자라나 일정한 거처를 정하면 스스로의 뇌를 자양분 삼아(소화시켜버리고는) 식물이 된다고 한다. 조엘 바칸이 『기업의 경제학』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기업의 상술이란 것에 도취되어, 언젠가부터 우리 역시 생각하지 않는 소비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기업에게 도덕을 떠맡겨버린 소비자의 책임(=권리)은 전혀 없는 것일까?



하청 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 그들과 본사와의 긴밀한 협력, 고객과 투자자들에 대한 윤리적 문제, 어린 청소년들의 노동, 기업의 영업 활동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 언제나 그렇듯 기업과 이윤은 머릿속에서 잘 연결되는 반면, 이윤 대신 윤리라는 관점이 들어서게 되면 다소 갸우뚱거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독성 화학 물질을 그대로 방출하는가하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배려 없는 자세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경험해왔다. 비베가 지적하듯, 기업의 도덕성은 단순히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도덕적 자질의 총합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과 분위기를 연관 지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님과 동시에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과도 같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을 무시해서는 기업 윤리의 문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의 기업이란 독립적 인격체로 취급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영리보다 사회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기업들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위험하게도 보인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기본적 존재 이유는 이윤 추구에 있질 않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일단 많은 문제들에 성실히 대답부터 해야 한다. 그것도 문제들이 제기되기 전에 미리 답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자기 책임 하에 행동해야 하는 소비자와 투자자의 출발점도 바로 이런 대답이다. 그들은 기업이 명확하고 충실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때에만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내세운 약속을 실제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ㅡ 본문 p.26




비베는 말한다. 합리적인 행동은 우리가 결정한다고. 그러면서도 윤리 문제에 관한 공공의 논쟁은 합리와 거리가 멀다고도 했다. 그는 윤리를 말하기란 쉽지만 그러한 윤리를 실천하는 일은 비록 뜻이 있어도 매우 어렵다고 덧붙이고 있다. 더군다나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기업의 사업 모델과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가 복잡할수록 문제는 더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그는 윤리 문제를 감독 통제하는 부서를 따로 둘 것을 역설하고 있는데, 일견 위반 사례가 단 하나도 적발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과연 좋은 결과에 해당할까? 비베에 따르면 그것은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반 사례를 알리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기업들이 외려 훨씬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에는 반드시 소비자가 '간섭'할 필요가 있다. 집요할 정도로 말이다. 소비자 한 사람의 구매 태도가 어떠한 현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이 뭉치게 되면 거대한 경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합당하다(「그것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목적은 세계적 기업에 대한 정보와 평가에 그치지 않고 또한 기업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관심을 일깨우는 데 있는 것이다.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에 제시된 세계 50개 기업에 대한 윤리보고서를 읽고 있노라면 페이스북을 평가한 단 한마디만이 머릿속에 남는다. 그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예리한 날붙이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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