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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네메시스』 요 네스뵈 (비채, 2014)


네메시스 - 6점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비채


리즈라는 건 모름지기 옆에 쌓아둔 채 ㅡ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앉은자리에서 ㅡ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읽는 맛이 더 좋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따금씩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 그득한 놈팡이임에는 틀림없지만) 통독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영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할보르센이 누구였지? 묄레르는? 엘렌은? 볼레르는? 이런 식으로 자문하면서 다시 한 번 전작들의 내용을 꿰어 맞추어야 한다(물론 해리는 제외시켜도 상관없지만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행히 전작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이 이 『네메시스』를 거쳐 후속편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고,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 사건이 언급되는 비중이 적어 최소한 바로 앞의 『레드브레스트』를 들추어야만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두 가지, 아니면 세 가지의 사건이 일어난다. 우선 은행 강도. 복면을 쓰고, 불필요한 복장도 최소화시켰으며, 성문 분석을 피하기 위해 은행원을 대변인으로 내세우기까지 한 이자의 이야기를 반추하는 해리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한다ㅡ 그리고 제프리 디버의 캐트린 댄스처럼 특출한 재능을 지닌 베아테 뢴.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해리의 옛 애인인 안나의 죽음인데, 비로소 소설의 제목이 갖는 의미가 이 시점부터 발화되고 있다. 더군다나 주된 내용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①해리의 누명, ②과거 엘렌의 사건. (얼마 전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박쥐』를 읽고 나서인지 주인공의 우울함이 급작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건만, 이것이 본래 그의 모습이라는 생각 때문에 안정감마저 든다) 상당히 복잡다단한 구성이다.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 베아테의 능력은 은행에 뛰어든 자를 분석하고, 그녀의 추리는ㅡ 사투리나 억양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어가 아닌 영어를 썼고, 섬유가 떨어져 단서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이 매끈한 옷을 입었으며, 경찰 인력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게끔 폭탄 테러를 경고하는 익명의 전화를 걸었다는 등의 대답을 이끌어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행 강도의 정체는 소설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드러난다. 뒤이어 발생한 안나의 죽음은, 최초에는 의외의 전개라 생각했다, 상당히 돌고 돌아 결론으로 향하는데 여기서 자칫 길을 잃거나 이야기의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네메시스(복수의 여신)'라는 단어를 가지고 노는 그들의 모습 또한 흥미롭고. 오슬로 경찰대학 심리학 교수인 에우네는 이것을 종교와 연관 짓기도 하는데 ㅡ 「기독교의 윤리는 복수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인들이 숭배하는 하느님은 그들 모두를 대변해서 복수해주는 위대한 존재야.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 불에 타게 되리라. 그거야말로 일반 범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완전한 복수 행위지.」 ㅡ 당돌한 베아테의 입에서 나온 간단명료한 두 단어 '사랑'과 '미움'이 그의 관점을 뭉개버린다(그리고 집시, 집시의 피). 맹목적 정의. 차가운 복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