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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민음사, 2014)


편의점 사회학 - 8점
전상인 지음/민음사


코드 메커니즘(인생)이라는 측면에서 내가 다소 나이브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일단 전제로 하자(이를테면 프랜차이즈 형태의 편의점 체제에서,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갑을 관계'가 신문지상과 텔레비전 뉴스에서 문제가 되었던 ㅡ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ㅡ 일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저 '소비'에만 눈을 대고 있기 때문에). 점포 1개당 일일 평균 방문객 359명, 하루 평균 880만 명 이상, 인구 2,075명 당 하나 꼴인 편의점. 내가 다니던 대학 내에도 편의점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지금의 편의점은 고등학교와 구치소 면회장에도 입점했으며 어느 병원에 있는 곳에는 벽면에 링거걸이가 설치되어있는가 하면 트럭을 개조해 만든 트랜스포머형 편의점도 존재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편의(便宜)의 표상일는지ㅡ 아니면 전상인 교수가 써놓았듯 개척 정신과 무한 변신의 화신인 것인지. 그렇다면 이 거대 로봇을 대하는 우리는? 편의점엘 가는 것과 그것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시스템은 작가 정희재의 책에서 '자본의 플러그'라는 말로 언급되었는데, 저자는 한술 더 떠 유명 산악인 조지 말로리를 데려온다. 「그게 거기 있어서.」 그러나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us)이 편의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다만 소비하는 인간의 자본 범주 안에 편의점 또한 속해 있다고 판단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그편이 온당하다. 그러니 (아직은) 「편의점 너마저!」 하고 외칠 필요는 없다.







……이것의 의미가 옆에 있는 것의 이미지에 맞는지 또는 옆에 있는 것의 이미지가 옆에 있는 것의 의미에 맞는지를 검토한다. 결과를 미리 아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양자 간에는 어떠한 자연적 매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품과 가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실제로 상품의 의미가 가격이며, 상품이 상품으로 존재하는 한 그 이외의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 언뜻 가격 속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품의 혼 속에서는 지옥이 미쳐 날뛰고 있다.


ㅡ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1권』 p.865~866




현재 한국에서는 휴대전화로도 편의점 결제가 가능하다ㅡ 덧붙여 기업들이 SNS를 통해 제공하는 모바일 기프티콘이란 것도 활용되고 있고. 그런데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m-pass라는 카드가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대중교통 정기권 기능 이외에, 현금을 충전하여 편의점이나 택시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다. 사진은 내가 일본에서 사용했던 정기권 '스이카(suica)'라는 것인데 본래는 가메아리(亀有)와 도쿄(東京) 구간이었으나 이사한 뒤로는 신주쿠(新宿)로 바뀌었다. 역에 설치된 기기에 카드를 넣고 갱신하면 본래 인쇄되었던 구간이 지워지면서 새로운 내용이 인쇄된다(소유주의 이름과 성별은 그대로). 본래는 super urban intelligent card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스이카(スイカ)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어로 수박이라는 뜻이므로 재미도 있고 색감 또한 초록빛이 난다ㅡ 우측 하단에는 수박의 줄무늬로 보이는 선로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m-pass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담배 자판기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음료 자동판매기에서도) 지금 우리가 휴대전화를 갖다 대는 것과 같은 동작으로 말이다ㅡ 우리는 그저 팔꿈치를 적당한 각도로 들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편의성, 점원과 손님이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계산을 끝낼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이 이미 이 세계에는 갖추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충전되어 있는 금액만 충분하다면 나는 내가 구입하려는 것들이 얼마인지를 묻지도 않고 얄팍한 카드 한 장만을 내밀어 삐 소리와 함께 퇴장하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기만 하면 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내가 편의점엘 가는 것은 오로지 담배가 떨어졌을 때뿐이므로 나라는 인간은 최적화된 시스템에 걸맞은 최적화된 인간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판매하고 있는 담배는 수십 종인데, 상품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번호표를 붙여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75번 네 개요」라고 단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양상이 달라진다. 「카멜 필터 주세요.」 「이거요?」 「아뇨, 저기 낙타 그려진 거요.」 「이거요?」 「아뇨, 그건 라이트(파란색)잖아요…… 노란색이요, 노란색.」 이처럼 담배를 잘 모르는 종업원이 있는 편의점에 들어갈 경우, 나는 그들과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눌 수가 있는 것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판국이니 저자가 '훼미리'마트가 씨'유'로 달라진 것에서 가족(family)의 해체와 개인(you)의 부상이라는 흐름을 끌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가 보드리야르가 언급한 '유리'를 재언급한 것 역시 매한가지다(반대로 어쩐지 백화점과 카지노가 생각나 으스스하기도 하다). 유리라는 투명성을 갖추었지만 철저하게 매출과 마케팅을 향한 집념. 요컨대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 나타나는 일들 ㅡ 많은 오른손잡이들 때문에 쇼핑 동선을 입구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국민 평균 신장의 증가를 반영하여 판매대의 높이를 3센티미터 올리는 등 ㅡ 은, 기호는 재화를 장식하고 재화는 기호의 모습을 띠었을 때만 재화로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게끔 한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편의점(만이 아니다)을 정녕 '꿈의 정거장'이라 해도 되는 것인가? 편의점에서는 택배를 주고받을 수 있고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있으며 와인은 물론 젖먹이 돌 반지와 자동차까지 구매할 수 있다(식사 대용식품이 가장 많이 판매된다는 사실로 보건대 정말로 'family → you'의 관계도가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건이 아닌 일상을 구매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광장이 아닌 '자기만의 방'인 것이고? 글쎄, 아니면 자본주의에 맞추어 새로이 마련된 이채로운 광장이라고 봐야 할는지도.



덧) 엊그제 신문에서 뜨악할만한 기사를 보았다. 드라마 제작사가 책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출판사에 5억 원(VAT 별도라네, 친구!)의 제작지원금을 요구하는 제안서가 공개된 것. 모 프로덕션 관계자는, 이미 정해진 큰 틀의 주제는 있으나 출판 예정인 책의 스토리대로 변경은 가능하다고 했다. 더군다나 주인공의 직업을 작가 겸 출판사 사장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단다. 그렇다면 거대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이미 2011년 편의점의 시장 규모는 10조 가까이 되었고 2015년에는 18조원을 기대하고 있다. 편의점의 생존 기간이 평균 4년이라고는 하지만 성장률을 보면 현재 편의점의 판매액 증가율은 2011년에 17.9%였고 이후 계속해서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주요 편의점들이 외국 본사에 지불한 로열티는 200억 안팎에 이르며(이것이 2년 전의 일이다) 편의점 사업에 새로 진출하는 곳도 있다(홈플러스, 모나미를 비롯해 얼마 전 신세계 그룹이 '위드미'를 인수했다). 우스꽝스러운 말이지만, 드라마 주인공을 편의점에서 일하는 88만원 세대나 점장으로 설정하는 것을 넘어, 저들에게 자신들을 알릴 의지만 충족된다면 아예 드라마 자체를 만들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편의점, 너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