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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대구』 마크 쿨란스키 (RHK, 2014)


대구 - 10점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거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소위 '대구 전쟁(the Cod Wars).' 생선의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를 붙이다니 이상할 법도 하건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자연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지루하고도 커다란 전쟁이 막을 내리고 나자 북대서양의 어족은 크게 늘어났고, 더불어 이때 각국의 어업에 관련된 '영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영해선 안쪽으로 들어온 선박을 나포하고, 대륙붕에 기인한 영해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하며, 해안 경비대 선박에 무기가 장착되는가하면 이 대구 전쟁은 공해상에서의 '범퍼카' 게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p.200)ㅡ 지난했던 시간이 흐른 뒤 1976년, 유럽경제공동체는 200마일 영해를 선언하게 된다. 고기는 식용하고 간에서는 지방유를 뽑아내는 이 생선, 물론 어류 중 이 하나만이 뜨거운 감자는 아니다. 하나 언론에서 생선의 이름을 붙여 전쟁이라 일컫고 또 이것이 무려 세 번의 줄다리기를 거듭했다는 것은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





…… 트루먼은 선포했다. 「어업 자언의 보전과 보호에 대한 다급한 필요성에 비추어, 미국 정부는 해안 인접 공해상의 해역에 환경보호 구역을 수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바이다.」 (...) 이 선포가 나오자마자 전후에 새로운 민족주의 열풍이 불던 라틴아메리카가 이에 호응했으며 그중 여러 나라가 자국의 대륙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ㅡ 본문 p.195~196




책을 쓴 쿨란스키조차도 대구(cod)라는 말의 기원은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그는 이름에 얽힌 다양한 '설'을 전해준다. 영어를 사용하는 서인도제도에서는 소금에 절인 대구를 '소금 절임 생선(saltfish)'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소금 절임 생선은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중세 영어에서 코드라는 말은 자루나 부대 혹은 음낭을 가리켰단다. 대구라는 생선이ㅡ 성행위를 삼가야 하는 날에 신앙심 깊은 가톨릭교도들이 먹는 식품으로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어에서 대구를 지칭하는 단어가 어째서 성적인 암시를 얻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p.59) 그런가하면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다. 17세기 대구 어업 덕분에 가문의 부를 쌓아 올린 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대구 귀족'이라 불렸다. 그러한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대구를 부의 상징으로 여겨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州)의 인장, 최초의 미국 주화, 대저택 계단에 장식된 도금한 나무 대구. 심지어 의사당에 매달린 나무로 조각된 대구 ㅡ 이것은 입법부의 이전 때 미국 국기로 감싸 호위가 붙어 옮겨졌다 ㅡ 도 있었는데, 쿨란스키는 이것을 두고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며 냉소를 보낸다. 이렇듯 『대구』는 제목 그대로 '대구'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아가 그에 얽힌 천 년의 역사와 세계사의 추이를 톺아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90년대 후반 출간되어 『죠스』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어류 관련 서적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어업 기술(항해술, 레이더, 기상에 관한 무전 연락 등)이 날로 발달함에 따라 물고기를 포획하는 데에도 위험성이 다소 줄어들기는 했으나, 이 어업의 현대화로 인해 케이블이나 트롤망(저인망), 롤러에 끼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발생한다. 현대식 트롤선(저인망어선)에서는 기계에 끼어 죽는 것이 주된 사망 원인이라고 한다. 80년대 중반 캐나다의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의 어민 10만 명당 212명이 일을 하다가 사망했는데 이는 다른 업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숫자이며, 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일 관련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10만 명당 5명이었던 반면 어민의 경우에는 10만 명당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p.148) 쿨란스키는 사고 비율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를 어부들의 부족한 잠이라고 본다. 식탁에 올릴 생선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그들은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생활전선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ㅡ 얼마 전 도심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가 떠오른다. 15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렸다는 해당 기사의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우려를 표시했다(정확한 원인은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기록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그가 '과로'에 시달렸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족속은 육류만으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 보다. 물고기를 잡는 동시에 한편에서는 즉시 그것을 냉동할 수 있는 고성능 선박으로 어류들을 '쓸어 담은' 결과, 지난 90년대 이후로 우리의 대구는 멸종에 가까운 재앙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이 무분별한 남획은 각국의 저간의 사정과 기업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논의를 풀어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 쿨란스키에 의하면 UN 식량농업기구가 추적하는 물고기 유형의 약 60%는 완전히 이용되거나 과도하게 이용되거나 심지어 고갈된 것으로 분류된다(이 책이 출간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10년 도 더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 세기에 들어서자 소금에 절인 대구는 고삐 풀린 상업주의를 무엇보다도 잘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즉, 모뤼(morue; 프랑스어로 대구를 뜻한다)는 상업에 의해 격하된 뭔가를 의미했다. 「그래, 그래. 너한테서 소금기를 없애주마. 이 대구(grande morue)야!」 에밀 졸라의 1877년 작 소설 『목로주점』에 나오는 대사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소설가)은 언젠가 별들이 '투 모뤼(tout morue; 너무나 대구 같은)'하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는 별들이 소금에 절인 대구로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우주가 값싸지고 뒤틀렸다는 뜻이다.


ㅡ 본문 p.61






책 말미에는 50여 쪽이나 할애되어 지난 6세기 동안 이루어진 대구 조리법이 덧붙어 있는데 이것은 천 년에 걸친 대구의 역사를 우스꽝스럽고도 자못 진중하게 인식되게끔 만드는 장치임에 분명해 보인다. 물론 쿨란스키의 글은 역사이며 사실이지만 『대구』는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있다(멜빌의 그것과는 또 다른 흥미로움이 있다). 생선 한 마리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와 지도가 될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이다ㅡ 생선 저미는 기계, 생선 냉동법의 연구, 수산물 회사의 설립, 급속 냉동 공정 개발……. 그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길이가 약 1미터나 되는 대구의 민담으로 시작하여 대구의 몰락까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마지막 유대가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스런 목소리로 다룬다. 흰 살 생선 중에서도 살이 하얀 편이어서 격찬을 받고 접시 위에서는 빛을 발하며 2할에 가까운 단백질을 함유한 대구. 살은 먹고 부레는 접착제에 사용하고 껍질은 먹거나 가죽으로 가공되었던 대구. 쿨란스키는 끝에서, 포유류는 한 번에 100만 개의 알을 낳지는 않는다며 포유류를 죽여 없애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죽여 없애는 쪽이 더 어렵다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천 년에 걸친 대구 사냥 이후에 우리는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책에서 쿨란스키가 묘사한 어느 항구의 풍경으로 눈을 돌려 보자. 대구를 잡아 온 배가 항구로 들어온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어획량이 충분치 않다. 생선을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누군가 어부에게 묻는다. 「도대체 나머지 물고기는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어떤가. '투 모뤼'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