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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알마, 2014)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8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마


트리스로 만들어진 푹신한 무덤 위에 올라앉아서도 그는 (굳이)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가 말한 '기도'의 정의를 중얼거린다. 「기도: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히친스는 끝까지 이런 식이다……. 그가 식도암으로 죽기 전 써내었던 이 책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나카지마 라모의 소설이 떠오른다. 라모는 매일같이 마셔댄 술 탓에 알코올성 간염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바로 『오늘 밤 모든 바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술 때문이 아니라 뇌좌상과 외상성 뇌내혈종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 말했다는데 실제로도 계단을 굴러 그의 삶은 끝이 났다. 그에 비하면 히친스는 병상에서(매트리스 무덤) 생을 마감했는데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ㅡ 이 한국어판 제목에는 상당한 반어법이 투영되어 있는 셈이다 ㅡ 그의 투병일지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그 본래의 자질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 '자질'이란 아마도 뫼르소의 저항 방식과도 닮아있을 것이다. 교도소 부속 사제의 면회에서 뫼르소는 특유의 태도로 사제를 신경질적으로 만든다.





……그는 주제를 바꿔 어째서 내가 자신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이 말은 내 신경을 건드렸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제,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다른 이들하고 같이 있는 사람이에요.


ㅡ 알베르 카뮈 『이방인』




히친스를 처음 읽게 된 것은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짧지만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든 이후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 서너 권의 책을 더 읽고 나서 나는 완전히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는 급진주의자, 독불장군, 사고뭉치, 반항아, 성난 젊은이, 인습타파자, 불평분자, 반대자라고도 불릴 수 있으며, 『젊은…』에서는 그 스스로가 과거의 '악동'에서 탈피해 '괴팍한 늙은이'가 될 때까지 오래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그는 말했다. 아무리 귀에 달콤해도 비이성을 경계하라고.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면서 무언가에 스스로 복종하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는 귀를 틀어막고, 남의 동정을 불신하고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더욱 중시하며, 모든 전문가들을 그저 포유동물로 여기라고. 침묵은 무덤 속에서도 한없이 할 수 있으니 논쟁과 반목을 기쁘게 찾아 나서라고 말이다.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히친스가 바로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났다. 신자들의 웹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을 저주하는 글을 찾아 읽으면서.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기 목구멍 암에 걸린 것을 두고, 그가 목소리를 이용해서 신을 모독한 것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 누구일까? (...) 히친스가 몸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특히 신성모독을 할 때 사용했던 부위에 암이 생긴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 그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찮은 존재로 시들어가다가 끔찍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 뒤에 진짜 재미가 찾아온다. 그가 지옥불로 보내져 영원히 불에 타며 고통받을 테니 말이다.


ㅡ 본문 p.33




글을 읽다 보면, 그는 주위에서 건네지는 이런저런 위로(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하는 위로의 말은 때로 귀찮은 짐이 된다)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던 나머지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4기 식도암에 대해, 오로지 그것에 대해서만 물어보세요'라고 적힌 커다란 배지를 옷깃에 달고 돌아다닐 생각을 해 본 것 같다. 그러고는 그가 앓고 있는 병이란 것이 지나치게 정기적으로 자신을 놀리듯 오늘의 스페셜 또는 이달의 별미를 자신 앞에 내놓는다고도 했다. 궤양이나 신경장애와 같은 합병증 말이다. 애초 나는 병상에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는 누군가의 글은 읽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히친스는 그러한 지루함을 남기기보다는 외려 요기 베라와 같은 집념과 블랙 유머로 중무장했다. 끝에 남긴 단속적 메모가 흡사 다자이 오사무의 약물 중독 시절의 문장을 생각게 하지만 구급차에 실린 산소통이 이제는 그에게 숨 쉴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내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