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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사이퍼펑크』 줄리언 어산지 외 (열린책들, 2014)


사이퍼펑크 - 6점
줄리언 어산지 외 지음, 박세연 옮김/열린책들


호(cipher)에 저항을 상징하는 펑크(punk)를 붙여 만든 합성어, 사이퍼펑크. 현재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2년 전쯤엔가 프랭크 에이헌의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이란 책이 출간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늦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책은 강력한 경각심을 깨우게 하지는 못했으나 현재 우리가(온 지구인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리라. 구글과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는 것을 자처하고 있다는 말은 이제 단순한 비유가 아니게 되어버렸으니까.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 프랑크 비베 역시 그의 책 『애플은 얼마나 공정한가』에서,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이런 식의) 정보 수집에 그냥 익숙해지고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 빤하다며 구글에 대해 쓴 소리를 한 바 있다ㅡ 그런가하면 함께 언급한 페이스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만을 남겼다. 「안 좋아요.」





……권력 집단들은 여전히 엄청난 양의 비밀 정보들을 숨기고 있고, 그 규모는 공개된 자료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은밀하게 숨겨진 전체 정보의 규모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부분은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세상의 모든 신용카드 거래 내역을 알고 있는 권력 내부자들과 구글을 이용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블로그와 댓글을 검색할 수 있는 사람들…….


ㅡ 본문p.188




어산지는 신문 기사의 삭제에 대해 말한다. 역사가 바뀔 뿐만 아니라 아예 사라진 것이라고. 그러고는 오웰이 남긴 명언을 덧붙인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서구 국가들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형태로 역사가 지워지고 있으며, 이는 일종의 사후 검열에 해당한다고 말이다(그러나 이러한 사후 검열이 서구 국가들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의 자유와 그 정보의 원활한 흐름이라는 말이 '검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한병철은 그의 책 『투명사회』에서 '디지털 통제사회는 자유를 빨아먹고 산다'고 썼는데, 물론 그는 모든 것에서의 투명성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왜곡된 투명성의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까발려지고 깨부수어야 할 중요한 명제임에 틀림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지금 현재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ㅡ 언젠가 어산지는 오페라하우스 안을 들여다보다가 쥐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 쥐는 이리저리 달리다가 천으로 덮인 테이블에 뛰어올라 음식을 마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는 쥐의 모습을 보며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엄청난 복잡함과 부조리, 타락과 더불어 극단적으로 제한적이고, 동질화된, 초국가적 포스트모던 전체주의 체제.(p.207)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저항 엘리트라는, 바로 오페라하우스 안을 내달리는 똑똑한 쥐들 말이다. 그는 세계 문명은 포스트모던 감시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것이며 우리는 이미 그러한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그것이 단순히 가정법으로 설명되어서는 당최 말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