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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캐리』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03)


캐리 - 10점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황금가지


은 스로가 『캐리』를 두고, 고등학교를 상당히 보편적인 방식으로 남성 및 여성 포식자들의 지옥으로서 관찰한다고 말했다.(스티븐 킹 『죽음의 무도』) 그러면서 드 팔마로 영화화된 《캐리》와 자신의 소설이 성공을 거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캐리의 복수는 체육 시간에 체육복 바지가 강제로 끌려 내려진 적 있거나 자습실에서 안경에 다른 애들의 엄지손가락 지문 세례를 받아본 적 있는 학생들이 찬성할 만한 복수인 것이다. 캐리의 체육관 파괴 장면에서(그리고 빠듯한 예산 탓에 영화에선 빠졌지만, 책 속에서 캐리가 집으로 돌아가며 벌이는 파괴적인 행진 장면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짓밟힌 자들이 꿈꾸는 혁명을 본다.」 킹이 아쉬워했던 점은 작년에 리메이크된 영화에서 다소 해소되었을지 모르겠다ㅡ 그러나 과거보다 영상이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되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클로이 모레츠를 제외하면).





음험하고 섹슈얼한 도입부를 가장 매력적인 장면으로 꼽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인간 말초의 근저에 존재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부분, 달리 말하면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일차원적인 살갗, 가족에게조차 치부로 여겨질 수 있다는 우려, 그래서 복수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ㅡ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것이(알지 말았어야 할 것이) 드러났다, 영원히 팬티 속에 감춰졌어야 할 것이 ㅡ 본능에 가까운 감정에 기인하고 있는 까닭에서일 것이다(주디스 버틀러라면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소설은 온통 붉은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는데, 바로 생리혈과 돼지 피가 그것이다. 캐리는 첫 장면에서도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마지막에 가서도 파티에 모여든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다. 염력이라니, 말이 안 되는가? 소설이란 것은 적어도 그 안에서만큼은 진지함을 확보하려는 야심이 있기 마련이다. 샤워실에서의 캐리는 생리혈을 쏟아내고 탐폰 세례를 받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밖으로부터 온 피를 뒤집어쓴다. 그러고는 탐폰을 던졌던 이들에게 적절한 반응을 되돌려준다. 킹은 자신이 만들어낸 고등학교 무대를 개미 사육장이라 표현했는데ㅡ 여기에서 고등학교라는 단어만 손으로 가리게 되면 일종의 인종 차별, 계급 짓기, 불안한 남성과 학대받는 여성 중심의 구조가 보인다. 순식간에 내가 '어린 애새끼들' 중의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