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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대붕괴』 폴 길딩 (두레, 2014)


대붕괴 - 8점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두레


「지는 꽉 차 있다(The Earth is full).」 책을 시작하는 첫 문장인 동시에 이 『대붕괴』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하고도 날붙이 같은 말이다. 길딩에 의하면 2009년의 경우, 지구 전체 차원의 분석 결과를 보면 활용 가능한 땅의 140%, 즉 지구 1.4개가 있어야만 현재와 같은 경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ㅡ WWF 등에서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말인즉슨,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본래 지닌 능력의 140%로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다(앞으로 15년쯤 후면 지구가 2개는 있어야 한단다). 지구가 작동할 수 있는 허용치를 넘어 과부하가 걸리고, 또 경제 성장이 계속해서 증폭되어만 가고, 사회적 병폐를 예보하는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기후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로…… 그러다 꽝, 바로 '대붕괴'다. 그는 이러한 대붕괴(the great disruption)에 직면하게 되면 먼저 경제 성장이 멎은 후 이런저런 부침을 겪다 자연 환경의 조직적 붕괴를 경험할 것이라 보고 있다. 이미 140%인 현재의 초과 상태로 보건대, 그가 우려하고 걱정하는 현실을 환경운동가의 호들갑이라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우리(지구인)는 그간 수많은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를 어느 정도는 적절히 다스려 왔다고도 볼 수 있다. 길딩 자신도 인정한다. 인류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해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엄청난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해냈다고. 2차 세계대전 후의 다양한 실례가 있었고 1960년 이후 계속된 농업 부문의 녹색혁명 또한 존재했다고. 세계적인 기후 과학자 제임스 핸슨 역시 과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ㅡ 「우리는 정점을 넘어섰지만 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넘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길딩은, 소신이나 희망이 아닌, 수학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차분하고 합리적인 분석을 해야만, 과연 시장과 기술이 우리를 이러한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번은 절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이다(p.102)ㅡ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세계 종말 시계는 자정 5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대붕괴』는 느닷없이 '쇼핑'에 관한 이야기를 들이민다. 우리 모두가 쇼핑을 중단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아주 극단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양적 경제 성장에 쇼핑이라는 것이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끔찍하게도) 길딩의 설명은 이렇다. 만약 물건을 좀 더 많이 사들인다고 해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게 아니라 외려 여가 시간이 부족한 생활, 불만족스러운 근무, 끊임없이 쌓이는 빚의 악순환의 반복이 하나의 추세로 나타난다면 쇼핑이 대폭 줄어들어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논리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흥미로운데, 잠시 그의 말을 간단히 인용해 보겠다. ①소비를 중단하면 소득을 위한 노동을 소홀히 하게 된다. ②빚과 신용카드가 없어지면 은행이 타격을 입는다. ③장시간의 근무 대신 여가 시간이 늘어난다. ④만약 미국인들의 소비가 감소하면 중국은(저임금 노동력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쓸 물건을 만들어내므로) 제품 생산을 중단한다. ⑤중국의 대미국 수출이 줄어들면 국제수지 흑자 역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미국 경제의 돈줄 구실을 하는 국채를 사들이지 못한다. ……장난스럽고도(동시에 우악스럽다) 위태로운 결론이 아닌가?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소비사회, 소비주의 등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재화를 소모한다'는 뜻의 소비라는 말 자체를 기꺼워하지 않게 된 것만 같다ㅡ 소비를 거부하는 안티 소비(anti-consumption)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나는 길딩의 말을 들으며 약간 동요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소비가 줄어드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차 ㅡ 양보다는 질! ㅡ 자신 개인의 삶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겪고 있는(겪게 될) 경제 위기가 물적 소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면 소비 심리는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 빤하다. 그리고 그 소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쇼핑'이 아니던가.





길딩은 몇 년 전 곧 닥칠 생태계 붕괴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논문의 제목은 <Scream Crash Boom(절규 붕괴 꽝)>이다. 그는 자신이 쓴 논문 내용을 이렇게 요약한다. 「1950년대 말부터 진행된 행동 촉구라는 의미의 ㅡ 절규는 거의 끝나가고 있고 ㅡ 생태계와 경제의 ㅡ 붕괴가 시작되고 있어 머잖아 ㅡ 엄청난 규모와 빠른 속도의 반응으로 ㅡ 우르르꽝꽝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p.21) 그러나 만일 소비재 생산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많은 사람들이 재활용을 통해 나눠 쓰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나아가 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매하는 전 세계적인 운동을 벌여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영농방식이 되살아날 수 있게끔 시장 수요를 키운다면? 각국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에너지 소비 축소 캠페인을 벌인다면? 별로 지닌 것이 없는 사람들이 좀 더 재산을 불릴 수 있도록, 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부가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길딩다운 물음이며, 이것들은 가히 이상적인(미안하지만 뜬구름 잡는) 논의의 미심쩍은 냄새를 풍기면서도 동시에 꽤 매력적인 제안이다. 심지어 그는 『대붕괴』의 마지막 장에 들어서서, '이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이지만 내 삶이나 인류의 마지막 장은 아니'라며 오히려 출발점일 뿐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우리는 이 책처럼 인간 사회를 둘러싼 무수한 골칫거리들을 주목한 다음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편을 부록으로 제시한 글들을 종종 읽어 왔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흥미롭게 톺아보았던 이유는ㅡ 전문가적 지식수준을 요구하는 그악함이 없다는 것, 곰곰 생각해 보면 근거가 명확하고 적확하다는 것, 개인의 실생활과 집단체(기업)의 실물 모델로부터 논의를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는 꽉 차 있다. 시장과 기술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가? ……이번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역치 값을 건드리는 위기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