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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에두아르도 라고 외 (열린책들, 2014)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 - 10점
에두아르도 라고 외 지음, 신미경 외 옮김/열린책들


난 버즈북 로베르토 볼라뇨 편을 통해서부터 그에 대한 하나의 비유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지겹게도 들어 왔다(당시 책값은 666원이었고 이 『볼라뇨 전염병 감염자들의 기록』은 2,666원이다). 버즈북에 실린 글에서 스페인의 문학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이그나시오 에체바리아는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시한폭탄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볼라뇨는 항상 문학이 질병과 같다고 했는데, 농담은 볼라뇨의 작품이 문학이라는 병에 감염되지 않게 막아 주는 백신이자 면역 체계의 역할을 담당한다 (...) 볼라뇨의 작품에서 유머는 '꿈의 일부분이며 몇십 년 뒤 우리가 파멸을 뜻하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게 될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을 견뎌 내고 푸닥거리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볼라뇨가 사망하기 3년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했으며 적어도 적당히 행복했다고 답한 것으로 보건대, 우리의 유명한 편집자는 볼라뇨의 다분한 신경질적 기질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괴상한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ㅡ '젠장'과 '씨발'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볼라뇨 자신의 답변으로 추측하자면 솔직히 그것의 정체가 질병인 것인지 아니면 백신인 것인지 약간 헛갈리기는 하다. 심각하게 절망적이고 대부분의 것들이 파괴된 상황이긴 한데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거나, 솔직한 방식으로 소설의 이야깃거리를 얻었지만 그 결과물이란 것이 지극히 악의적이고 하나의 실종 사건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될 적에 더욱 그렇다(나는 빌어먹을 '내장 사실주의'의 의미를 당최 알 수 없으며 ㅡ 그럴 노력을 쏟고 싶은 생각도 없다 ㅡ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일하는 금정연 씨가 이 책에서 자신을 '후장 사실주의자'라고 쓴 것에 대해서도 그 속뜻을 물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게 볼라뇨는 그저 소설가일 뿐이다. 그리고 그를 좋아한다. 책에 빠져서 줄담배를 피우는 것도 좋고, 특정의 소재를 재차 특정의 악과 결부시키는 방식도 좋다. 그는 탐정 소설을 쓰지 않으면서 독자를 탐정으로 만든다. 그에게 들어가지 못할 바늘구멍이란 없고, 유언 집행인 흉내를 낸다. 그는 해체적 양상에서 시작해 신비스런 탐색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그는 해독하기 어려운 십자말풀이이며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싶은 암호문 같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무죄이긴 하나 유죄가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내가 아는 사진에서만큼은 나와 비슷한 안경테를 걸치고 있다(실제로 만나 목격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의 작품들이 좋다.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볼라뇨에게 지독히도 감 염  되   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