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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의적 메메드(전2권)』 야샤르 케말 (열린책들, 2014)


의적 메메드 - 상 - 6점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열린책들


말 스스로도 단언한다. 「나는 영웅들을 믿어 본 적이 없다. 반란에 초점을 맞춘 소설들에서조차 내가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소위 영웅이라는 자들은 민중이 휘두른 효과적 도구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역자가 소설을 두고 쿠르드족과 터키 정부를 연상케 한다고는 했지만(작가도 쿠르드족 출신이다) 동시에 케말의 그것은 아시모프가 줄기차게 말해 왔던 '미래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나 결국 소설일 뿐이라는 한숨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ㅡ 실은 이 양쪽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어차피 민중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웅은 끝에 가서는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 셈이 될 테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메메드처럼 직접 나서는 영웅의 모습 대신 꿋꿋한 투혼만으로도 영웅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메메드와 같이 정부의 영향이 거의 미치지 않는 지주의 악행에 맞선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3선 개헌에 반대한 노 변호사 정구영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까? 그는 가족들이 정보부에 신문을 당하는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이러한 소설 속의 메메드는 반란을 도모하는 위법자이지만 독자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를 들이밀면 거기에 반대로 '악법의 속성은 결국 악'이라고 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이것은 소설에서건 현실에서건 모두 적절한 생각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의적 메메드』와 같은 소설은 주인공과 닮은 영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그와 함께 변하지 않는 척박함도 함께 남겨둔다. 이것이 단순히 소설이기 때문일는지 아니면 (장소와 인물만 바뀌는) 현실이 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일는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소설이라는 예술을 공공의 미라 본다면 귄터 그라스의 표현대로 '정치적 책임 의식이 있는 모든 사람이 케말의 호소에 응답'할 수 있도록 추궁하는 것은 결국엔 민중의 몫(책임, 의무, 권리ㅡ 어느 쪽으로 부르든 상관없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