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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리처드 예이츠 (오퍼스프레스, 2014)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 8점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윤미성 옮김/오퍼스프레스


다 고독하거나 공허하거나 아니면 후유증 내지는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나와 춤을 추고, 예이츠의 미니멀한 묘사는 굳이 시대상을 들먹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고독의 피해를 입은 자들을 고스란히 현대로 데려와 이질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신중한 탓에 외려 인물들은 필요 이상으로 쓸쓸하고 고달프게 그려진다. 여자는 오래도록 입원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무신경하고 남편 또한 그녀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아프지 않아」). 그들은 서로에게 고독을 심어준 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그녀가 남편을 뒤로하고 병원을 나설 때는 어딘지 모르게 김승옥이 그린 몰래 여관을 빠져나오는 두 젊은이를 연상케 한다. 예이츠의 단편에서는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파편적인 인간관계가 대두된다. 그들은 서로의 정서에 관여하지 않음으로써 싸워야 할 적이 없는 사회에의 일체의 개입을 부정한다. 이것은 「상어와 씨름하는 남자」에서 약간 뒤틀리긴 하지만 대동소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낯선 이와 지내기」에서는 나이 지긋한 여교사와 학생들 간의 심리적 줄다리기가 엿보인다. 무뚝뚝한 선생을 담임으로 맞이한 학생들은 그와 대비되는 분위기의 옆 반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소풍에서조차 훈계하는 담임으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이따금씩 보이는 그녀만의 (어색하긴 하지만) 상냥한 모습으로 인해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다. 끝에 가서 아이들이 느끼고자 했던 ‘해방의 기쁨’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예이츠는 가난, 실직, 애정 결핍, 좌절, 오만, 괴리, 실망 등을 열한 편의 이야기에 담았다. 이것은 반드시 방황이나 도시화, 자본주의와의 연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편들이 보여주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 그대로이며 나/당신의 모습이다. 눈여겨볼 것은, 어떤 고독감이 됐건 그것은 얼마든지 형태를 달리해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