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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2014)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 8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란에게 트렁크가 있었다면 놈베코에겐 다이아몬드가 있고, 100살 먹은 노인네가 양로원을 탈출했듯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역시 분뇨통을 날라야만 하는 공동변소에서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전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도 다양한 측면에서 두드러지고 또 상당한 재미를 갖추었다. 물론 하나하나 뜯어보면 죄다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남아공에서 태어난 놈베코는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랐고(그녀는 나중에 '네이름이뭐더라'로 불리게 된다), 졸지에 그녀를 상관으로 대해야 했던 타보는 아랫도리 성질을 죽이지 못해 놈베코로부터 양쪽 허벅지를 가위에 찔린 다음 리놀륨 장판 밑에 숨겨둔 다이아몬드를 활용하지 못하고서 강도의 손에 죽었으며, 약간의 광기를 지닌(누구나 그렇듯) 말단 공무원 잉마르는 화강암으로 된 2.5미터짜리 석상에 깔렸는가하면, 바보스런 엔지니어 엥엘브레흐트 판 데르 베스타위전은 자동차에 세 번이나 깔아뭉개져 죽었다. 또 있다. 정신이 나가버린 미국인 도공은 CIA 요원들에 의해 죽을 것이라 생각하며 편히 지내는 와중에 오히려 그 자신이 '두 번'이나 죽어버렸고, 빌어먹게도 말을 안 듣는 셀레스티네의 할머니는 어느 겨울날 자동현금지급기에 손가락이 끼어 얼어 죽은 남자의 딸이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은 놈베코가 공동변소에서 일하지 않기로 결심한 탓에, 그녀가 여행을 떠나자마자 차에 치여 일이 꼬여버린 탓에, 핵무기가 담겨 있는 궤짝과 다른 작은 소포(빌어먹을 영양(羚羊) 육포!)가 수신인을 잘못 찾은 탓에 벌어진 일이다. 한 가지(실은 두 가지) 내가 의뭉스럽다고 여기는 것은ㅡ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주인공이 살아온 모든 순간순간이 모인 경험과 인간관계가 어쩔 수 없는 난관이 닥쳤을 때 하나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며, 미국/미국인(들)/그래미의 컨트리 사랑과 더불어 요나손의 중국/중국인 사랑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세 가지였다. 바로 그 우라질 핵……! 왜 이다지도 그는 핵폭탄에 매달리는가. 하긴 이 소설에서 핵은 터질 기미가 없고 그보다도 '더럽게도 바보 같은' 인간들이 더 시한폭탄 같긴 하다. 쓸지 안 쓸지 모르는 그의 다음 작품에서도 터질 듯 터지지 않는 폭탄이(사람 말고) 또 등장할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