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연금술사, 2014)



이 일문학을 전공한 자가 아니더라도 음악, 드라마, 영화 혹은 일본어 자체에 매력을 느끼고서 접근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학교에 다닐 적 다니자키니, 시가니, 간이니, 도손이니, 다자이니, 소세키니 하며 원서를 낀 채 공부하던 때와는 또 다르다. 이것은 와카나 하이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하이쿠는 굉장히 짧으면서도 계절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제약 아닌 제약 때문에 일반인들에 알려지기가 더욱 손쉬운 것이 사실이다(무시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ㅡ 아마도 바쇼의 <古池や蛙飛こむ水の音,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는 하이쿠를 접해 본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와카의 기존 운율(5.7.5.7.7)에서 앞의 17자만 따로 떼어낸 것에 대해 이어령은ㅡ 하이쿠는 시인의 영역이고 나머지 14자는 신의 영역이라 표현한 바 있다. 아마도 와카의 입장에서 보면 생략된 14자는 미완의 상상 혹은 가려진 침묵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이쿠는 역시 손가락 마디 하나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로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었고, 또 반대로는 쓰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안에서 밖을 향하는 (어디로든 뻗을 수 있는) 궤적을 지님으로써 찰나의 미학을 도탑게 한다.





時鳥厠半ばに出かねたり

소쩍새가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 없다.




내가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소세키의 시다. '악명 높게도' 수상 주최 초대를 거절하며 쓴 것이라 하이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하다. 비슷한 맥락 때문인지 소세키의 이 시를 읊을 때면 사람들은 60년대 국회의사당 앞에서 울린 신동엽의 일갈을 함께 떠올리는 모양이다. 「국회의원 두 개에 10원! 국회의원 두 개에 10원!」 신동엽은 정치인의 값을 똥금에 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소세키는 기름진 만찬보다도 자신의 소설 집필이 더 중요했다. 쉽게 돈을 벌고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을 욕하는 재미가 양쪽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제목 없는 한 줄의 짧은 시는 죽은 이를 그리기도 하고ㅡ<骸骨や是も美人のなれの果, 미인이었던 그대의 마지막도 해골이구나(소세키)>, 계절 자체를 묘사하기도 하며ㅡ<五月雨に鶴の足短くなれり, 장맛비 내려 학의 다리가 짧아졌어라(바쇼)>, 때로는 존재의 근원을 묻기도 한다ㅡ<蜘蛛に生れ網をかけねばならぬかな, 거미로 태어나 거미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교시)> 그리고 지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시가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는데 차량이 들어오기 전 짧은 순간을 이용한 점이 눈에 띈다(몇 년 전 시를 모집하는 공모전 요강에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ㅡ 문학의 힘, 시의 힘, 글 한 자락의 힘을 너무 나이브한 측면으로만 접근한 것 같아 아쉬운 대목이다). 산문과 달리 시는 분량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 짧은 하이쿠처럼 간결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이쿠가 본래 일본의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하면 원문 그대로 읽어야 맛이 살지만, 때로는 우리말로도 짧게 지어 보고 느낌으로써 순간의 번뜩임을 구현해내는 것 또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