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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신 백과사전』 마이클 조던 (보누스, 2014)


신 백과사전 - 6점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보누스


과 함께 출간된 『악마 백과사전』도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일단 이 책부터 집어 든다. 이미 한차례 러셀의 거대한 책 『악의 역사』(전4권: 데블,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로 어지러웠던 가운데 이번에는 수많은 신들을 맞이했다. 학창 시절 일문학을 전공한 탓에 아마테라스오오가미(天照大神, 아마테라스오'미'가미로도 읽는 모양)며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며 하는 길고도 긴 이름들을 외우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신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신들의 집합체이면서도 악마스럽기 그지없는 목록이다. 어느 종교이건, 어느 나라이건, 어느 신화이건 간에 신은 비슷한 종류의 신비로움과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이를테면 창조와 관련되었거나 기후를 관장하는가하면 풍요로움 혹은 공포를 가져다주는 형태로ㅡ 동시에 그들은 인간과 같이 섹스를 통해 자손을 낳고 직립보행을 하며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신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비슷한 상상력을 갖고 있는 인간이 그들을 만들어낸 것이므로.





만일 자연에 있는 모든 물체가 그 물체의 보호자나 수호자로 고려되는 어떤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행위는 그 물체의 물리적 상태뿐만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도살하기 전에, 벌채하기 전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을 짓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정령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ㅡ 서론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Flor de Pascua(부활절 꽃)』에 수록된 작품 《The Scapegoat(희생양)》이다. 그의 작품 특징은 반복과 순환의 고리인데, 악마가 신의 그림자일지 아니면 신이 악마의 방어기제일는지 알쏭달쏭하다ㅡ 이런저런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과 악마라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일종의 대용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신은 이를테면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자연계를 지배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화복이 아닌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쩌면 신이 있기 이전에 악마의 존재가 먼저일지도 모르겠다ㅡ 인간이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공포와 팍팍함에 대항해 신이 발명되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신의 성격은 추상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발전 등과 상응한다. 특히 자연신은 지구상의 모든 자연현상에 대응한다기보다 인간과 자연의 생활관계에서 기인한 측면, 그러니까 인간의 생활 자체와 관련이 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심지어 그들 사이에도 인간과 똑같이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 아폴론(apollo)은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의 신이며 제피루스(zephyrus)는 봄의 도착을 알린다. 넵투누스(neptunus)는 물과 관련된 농경 신에서 출발했고, 달의 여신 디아나(diana)는 숲에 살면서 동물들을 보호하며, 바쿠스(bacchus)는 담쟁이 덩굴이나 포도로 만든 관을 쓴 술과 도취의 신이다. 이렇듯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신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을 경배하는 것과 함께 자연 자체를 성스러이 여겨 풍요로운 앞으로의 삶과 정신적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한정된 세계관으로부터 우주관으로, 또 지배의 법칙 혹은 질서를 부여해 창조된 신들은 악마와 함께 인간이 정비한 생명과 힘의 관념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