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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독신의 오후』 우에노 지즈코 (현실문화, 2014)


독신의 오후 - 6점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현실문화


들에겐 편의점이 있고 포르노가 있으며 시간도 있다. 남녀평등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자는 제 손으로 밥해 먹기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 또한 잘 느끼지 못한다ㅡ 하지만 그들에겐 문명의 이기, 편의점이 있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따위 개나 줘 버리라는 식으로 연애만을 꾀하거나 기꺼이 상품이 되어주겠다는 여자 연예인을 안주로 삼아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ㅡ 하지만 그들에겐 포르노와 케이블 채널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완전히 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를 부양하거나 혹은 남에게 의탁하면서? 조카들의 재롱만을 추구하며 이따금씩 피붙이로부터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면서? 때로 '친구'와 '지인'을 구분해놓고 시간을 쪼개가며 어정쩡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런데 희한 것이 있다. 처음 보는 미지의 사람과 맞대면한 채 담배를 뻑뻑 피우는 흡연구역에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서로의 맨살을 구경하며 트림을 해대는 사우나에서, 신랄하게 정치판을 풍자하는 아나운서와 평론가들이 등장한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된 대합실에서ㅡ 그들은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꺼내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하곤 한다. 그런가하면 직장과 가족 이외의 인간관계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여성 화장품을 사용하고)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꽃꽂이나 뜨개질을 하는 수컷들이 생겨나고 있는 지금,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나 우연찮게 술집에서 안면을 튼 사장 혹은 단골들과의 제2, 제3의 인간관계가 시작되기도 한다ㅡ 남자들이란 언제든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독신이란 것은 자신의 소득을 스스로 관리하며 소비하는 데 있어 얽매임이 없기도 하지만 심한 감기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란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자신의 동선에 맞게 바꾸어놓는 자유를 누릴 수는 있지만 결혼한 친구들의 아이를 바라보며 가정이 생긴 이후의 예전 같지 않은 그의 배려를 통감해야 한다. 자, 그러면 연애를 해 볼까? 그는 어찌어찌 주파수가 맞는 처녀를 만났다. 연애의 장점을 과감히 버리고 들어가 보자면,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은 그의 익숙했던 생활 패턴이다. 그는 그녀와 함께 출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는 불편함을 감수할 때도 있을 것이고, 내키지 않는 정열을 쏟으며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며, 이 모든 것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관계를 이어갔더라도 정작 작별의 순간이 닥쳤을 땐 잠깐이나마 독신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었던 것을 잊어야만 할 것이다(여기에 빗대어 섹스 파트너의 중요성을 외치는 것은 너무 일면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 구성원이 되는 셰어하우스는 어떨까. 개인들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한편 싱글 라이프의 단점은 상쇄시켜 일종의 정신적 빈곤을 해결해주는 주거 방식. 문제는 함께 지내는 공동 주거인들끼리의 정서적 유대를 깨뜨리는 다툼이 일어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의 구매, 비용, 세탁과 청소 등의 역할 분배, 활동하는 시간대의 차이, 소음, 입주자를 찾아오는 방문객(이 상태에서 누군가의 애인이 찾아와 공동 주거인들의 눈을 피해 섹스를 하려 한다면?). 물론 독신의 형태가 이러한 사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혼 뒤 혼자가 되거나 사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홀로 살아가는 생활 형태에 놓인 남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직면해야 하는 것들이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면 질병이 찾아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가 먼저일 터다. 제 몸 추스르기도 벅찬 나이가 된 그는 부모의 간병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정년을 맞아 퇴직하기 이전에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며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자신의 직함이 없을 때의 경우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젊을 때의 독신과 인생의 오후에 놓인 독신은 전혀 다른 것이다. 팔팔한 청춘이 반드시 낭만적인 것은 아니듯 노후에 놓인 남성이 낭만만을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낭만적일 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