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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 구로카와 히로유키 (엔트리, 2014)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 - 8점
구로카와 히로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엔트리(메가북스)


초 하세 세이슈스러운 고품격 느와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겉표지부터 쌈마이적 미학을 풀풀 날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표현할 것까지 있나 싶기도 하나, 서로 사맛디 아니하게 뵈는 콤비의 본새로 보건대 작가 본인이 처음부터 우당탕탕 쥐어 패고 쥐어 터지는 모험 활극의 줄거리를 계획했다고밖에 조리가 서질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와 같은 초지일관적 스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것 없다. 세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은가. 미드 형사물은 사건을 해결하다 말고 시즌 2로 고고, 의학물 역시 환자를 치료하다 시즌 2로 달려간다는 것을. 한국 드라마는 어떠할까. 사건 해결에 노심초사하다가는 연애에 눈을 뜨거나 의술을 펼치기에 앞서 제 개인적 연애 소양을 키울 심산으로 아리따운 여성에게 입맞춤 지도편달을 부탁하는 마당에 뭘.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씨 말하기를 「공중파에서 찾아오셨던 분들은 앉자마자 하는 이야기가 '러브라인 안 나오면 안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토로하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어정쩡하게 남의 연애사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다 심각한 주화입마에 빠지기보다는 다소 진지함에는 취약하다 할지언정 하나부터 열까지 일관된 퍼포먼스를 보고 싶다, 이쯤의 생각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또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기본적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강력히 느껴지는 바 마니아적 부흥을 기대할 수도 있을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일본산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머리 싸매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이름이나 지명 등이다. 나는 일문학을 전공하기 먼저 이런저런 외설스러운 컨텐츠에 발을 담근 전력이 있었으므로 i'm coming이나 いく에서 비롯된 각종 외국어를 기억하고 익히는 것에는 그다지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일전에 가수 비의 노래를 듣고는 괜히 혼자 뜨끔했었지). 하지만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는 여기에 더쳐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야쿠자가 등장하고 있는 까닭인데 개개의 어깨들은 각자의 조직에 몸담고 있을 테고 그 조직의 본거지 또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장인물의 이름, 그들의 본거지, 야쿠자라면 그들이 속한 조직(이름), 조직의 본거지, 인물들의 이동경로 등을 모두 파악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소설 첫머리에 인물 관계도란 것을 그려 넣어 친절한 장인정신을 발휘하고는 있으나 막상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이다. 저분이 백 법학박사인지 이분이 박 법학박사인지는 나도 잊어버리고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휘발되고 만다. 작가도 이 점을 우려한 것인지 소설 중반에 주인공으로 하여금 레스토랑 냅킨에다가 조직 상관도를 그리게 한다. 하여 초반에는 독자 제위의 암기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나 어느 정도 잘 따라가기만 하면 알아서 정리해주시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주인공은 일단 둘이다. 니노미야 케이스케라는 짐짓 회의론자스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건설 컨설턴트ㅡ 실은 건설현장과 야쿠자를 중개한다. 나머지 하나는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구와바라 야스히코. 당연히 이쪽은 야쿠자ㅡ 18K에다가 테만 20만 엔이 넘는 안경을 쓰고 다니다 니노미야에게 맡겼는데 그만 잃어버리고 만다. 이 둘은 담뱃갑 흡연 경고문구 정도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 질 나쁜 콤비가 되어 협력한다. 니노미야 사무실의 리셉셔니스트로 보이는 유키라는 여성도 있다. 바수밀다적 농밀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등장의 기회가 없어 아쉬운 인물이다(다음 편에서 기대해 보자). 소설의 원제인 '역병신(疫病神)'만 보더라도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의 니노미야와 구와바라는 서로에게 자질구레한 사건을 가지고 온다. 그들에게는 각각 상대방이 역신인 거다. 시건방 떨다가 헤비한 주먹에 국부 마취되어 백기 투항하고 마는 야쿠자를 본 일이 있는가. 이쯤 되면 그저 동네 양아치라고 치부할 법도 하지만 어쨌거나 구와바라는 틀림없는 야쿠자다. 희한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교육자였고 거꾸로 니노미야의 부친은 전직 야쿠자였다. 이 어찌 부전자전이란 사회 통념의 메커니즘을 단박에 깨뜨리고 '난 아버지처럼은 안 될 거야!' 하며 떼를 쓰는 우리네 삶의 통렬한 단면이 아닐쏜가. 이 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폐기물 처리장 유치사업부터인데, 그로부터 붉은 모란과 검은 도마뱀 문신을 한 덩치에게 두들겨 맞고 바다에 뛰어들며 업체 사장을 납치하는데다가 사료창고에서 로프에 매달리기까지, 당연히 대부분 폭력을 당하는 것은 니노미야. 종반에 가서는 둘의 상황이 역전되어 감금된 구와바라를 니노미야가 구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생사 기브 앤 테이크라는 절절한 교훈이 아니던가. 물론 언제까지 조폭 이야기가 유효할 것인가 하는 염려스런 탄식을 모르는 바 아니나 재미있는 것 앞에 장사 없다. 실로 조직폭력배라는 것이 우리가 곁에 두고 꺼내보고 싶을 때마다 소환해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이상과 현실이라는 간극이라는 점에서 수긍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대척점을 차지한 주제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승복하게 마련인 법이니까(게다가 이렇게나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미주알고주알 쓰긴 했지만 단 한마디로 『니노미야 기획 사무소』를 설명해보자면, 즉 폐기물 처리장 유치사업을 둘러싼 보니 앤 클라이드스러운 어드벤처 서스펜스 액션 코믹 하드코어 범죄 미스터리 활극 버디 무비를 표방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