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오노 후유미 (엘릭시르, 2014)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 10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엘릭시르


도 끝도 없지만 스타크래프트의 밸런스 감각을 생각게 하는 만듦새다. 어떤 세계라도, 그러니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의 세계라도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런 세계라면 오늘날의 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호소인가. 먼저 지구상의 어지간한 나라라면 국민이 국가 원수를 뽑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그만두게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 왜. 왕을 선별하는 국민 자체가 절대적으로 불완전하고 상대적으로 우매한 존재이므로. 열두 개의 나라가 있는 저쪽 세계는 이렇다. 왕을 국민 대신 자비의 생물인 기린(麒麟)이라는 존재가 하늘의 명을 받아 고른다. 기린은 왕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감시와 진언을 하며 왕이 죽으면 다른 왕을 찾는다. 하지만 일단 왕이 옥좌에 앉으면 무조건 복종하게 된다. 동시에 왕의 정치가 잘못되면 기린은 병을 앓게 되는데 이를 실도(失道)라 한다. 왕이 도를 잃은 탓에 걸리는 병이다. 그대로 두면 기린은 죽고 왕도 죽는다. 애초 왕을 만든 것은 기린이므로. 물론 고칠 방법은 있다. 왕이 마음을 가다듬거나 기린을 놓아주는 것. 왕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기린의 병은 낫는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왕을 찾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남게 되지만.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요코라는 여학생으로부터 시작된다ㅡ 그녀에게 열두 개의 나라 중 경국(景國)의 기린이며 게이키(景麒)라는 호를 쓰는 금발의 남자가 찾아오고, 스포일러라고 할 것까지야 없겠으나 요코는 훗날 경국의 왕이 되기에 이른다.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짐작이 되질 않지만 앞서 말한 묘하고 깨지기 쉬운 균형, 즉 왕이 교만해지면 그를 옥좌에 앉힌 기린(≒국민)이 죽고 기린이 죽으면 왕 또한 죽게 되니 그가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처신에 있어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을 지키며 통치에 힘쓴다면 몇십 몇백 년이고 한 나라의 왕 노릇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럼 이 십이국의 세계는 순결무구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건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매한가지라는 것과 이곳보다 저곳은 아름다운 이상향이라는 것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어떻겠나. 오히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오노 후유미가 과거의 언젠가 「열두 개 나라 전체를 그릴 생각이 없으므로 '십이국기 시리즈'라 부르는 것은 거짓말밖에는 안 된다.」라고 했다는 점, 바로 그거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