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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부산은 넓다』 유승훈 (글항아리, 2013)


부산은 넓다 - 10점
유승훈 지음/글항아리


에 가 보기는커녕 은근슬쩍 영남권 언저리를 지나친 적도 없다. 군 시절 선임 중 하나가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뒤 '난 부산 사람과는 안 맞아' 하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적은 있으나 기본적으로 나는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자가 괴팍하고 좀스런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순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든 것이었으니 말이다. 윤전기에서 쭉쭉 뽑아낸 듯한 사진으로 보는 지형지물의 생김생김과 대하서사와 같은 부산의 역사는 부산 시민이 아니더라도 읽어봄 직하다. 깔깔 유머집스러운 곳은 찾아볼 수 없으나 실제로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그들보다 더 부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철저하다ㅡ 다만 보수동의 책방 골목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내가 원체 책 한 권을 두고 몇 날 며칠 읽지 못하는 자발스러움 충만한 인간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부산은 넓다』와 같은 책을 만만디(慢慢的), 만만디 하며 읽을쏜가. 소파와 합체되어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부산은 넓다』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시작해 저 옛날 왜관(倭館)의 역사, 영도 할매를 거쳐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 시대」의 다방 이야기와 산동네, 해운대까지 훑는다. 특히 도개교였던 영도다리에 그 많은 사람들이 빠졌다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였다. 직장을 잃은 뒤 룸펜이 되는가하면 도기회사 직공으로 근무하다 왼손을 잃는 사고를 당한 청년, 로맨스 소설에서처럼 연인과의 깨진 맹세에 투신한 사람들. 특히 피란민을 덮친 공포, 가족과의 이별, 전쟁의 상흔은 부산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사람들을 경제적 빈곤과 심리적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60년대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정부나 언론이나 매한가지였다. 제 몸을 해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정신 이상자로 몰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영도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을 구해낸 용감한 이도 있었다. 당시 영도대교 검문소에 근무했던 박을룡이라는 경사는 2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산 채로 끌어올렸다. 시대상으로 보건대 영도다리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간단한 조사만으로도 나올 법하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용감한 경찰 이야기를 발견했다는 건 저자의 세심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산 태생 사람들이 '나보다 부산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라고 한 것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는 법이구나. 하지만 뭐, 이것만 있겠나. 책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가라오케에서 노래방의 발흥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우암동 밀면, 영도 할매 전설과 동해안 별신굿까지 다루고 있다. 또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로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와 영화 《해운대》까지. 그야말로 부산의 근현대를 꿰뚫는다. 『부산은 넓다』는 그저 야매 킬링타임으로 볼 게 아니다. 고마 눈 까뒤집는 것 맹키로 단디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