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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옥토버리스트』 제프리 디버 (비채, 2014)


옥토버리스트 - 8점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비채


『옥토버리스트』는 스토리의 재미보다는 제프리 디버의 기술적 도전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일단 읽어나가면서 앞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이 반대로 서술되어 있는 까닭이다. 챕터 36부터 1까지 거꾸로. 따라서 역자 후기도 책의 앞에, 간기면도 출판사의 기존 편집 원칙에 반해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두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여주인공의 딸이 납치된 후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것ㅡ 물론 이것이 가장 앞부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끝이다. 페이지를 거듭해 넘기면 그 바로 앞의 상황이 펼쳐진다. 여자는 자신의 조력자와 함께 경찰에 쫓기고 있다. 그러기 전에는 사무실에 침입해 문서를 훔친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끊임없이 끝에서 시작으로 자리를 옮긴다. 제프리 디버식 반전은 어디에 숨어있나? 마지막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시작에 이미 그것은 제시되어 있다. 이 역순 구성은 꽤나 위험하다. 독자로 하여금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않고 계속해서 흥미의 끈을 잡아당겨야 하므로. 그러면서도 책의 서두(이야기의 끝)에서는 인물들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두고, 뒤로 갈수록(이야기의 시작 부분으로 갈수록) 외려 그들의 모든 것을 제공해야만 한다. 디버는 성공적으로 이 매듭을 풀어냈다. 아니, 너무나도 팽팽하게 꼬아놓았다. 다만 이 기술(技術, 記述)적 요소에 매립된 나머지 이야기의 짜임새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탓이 아니다. 『옥토버리스트』는 충분히 스릴의 흥미를 가져다주고 있다. 다만 시종일관 이러한 구성에 주의하며 따라가다 보니 맥거핀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기분마저 든다. 디버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나 소설의 재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앞에서 한 번, 뒤에서 한 번 읽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독자로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행동일는지 모르겠다. 나는 영민한 편에 속하지는 않으므로 기꺼이 다시 한 번 이 괴상한 독서에 참여하기로 했고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애초 내게 입력된 인물들의 정보가 재정립되며 그들을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악인이 선인이 되었다가 선인이 악인이 되었다가. 책 겉표지에는 '스릴을 원하는 그대, 지금 제프리 디버를 읽을 것'이라는 카피가 적혀 있다.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옥토버리스트』를 읽은 그대, 이번엔 뒤에서부터 읽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