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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모든 이의 집』 고시마 유스케 (서해문집, 2014)


모든 이의 집 - 8점
고시마 유스케 지음, 박성준 옮김/서해문집


골처럼 보이는 골조에 하나씩 살갗을 덧대고 외투를 씌운다. 흙을 빚는 소믈리에 미장 장인과 도편수에 의해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 건물의 형태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고 기와장이 장인이 잘 구운 기와로 지붕을 올린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천양지차로, 즉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의 트라이앵글이 잘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차를 구입하고서 고사를 지내듯 먼저 건물을 지을 때도 공사의 안전을 기원하는 지신제를 지낸다. '첫 낫질의 예'로 작은 대나무가 심긴 모래산에서 건축가가 낫질을 하고, '첫 삽질의 예'로 건축주가 모래산을 허문다. 마지막으로 시공자가 '첫 곡괭이질의 예'를 다해 모래산을 파 공물을 묻는다. 『모든 이의 집』은 '가이후칸(凱風館)'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을 짓는 이야기다. 책에 의하면 '가이후'는 옛 중국의 말로 남녘에서 불어오는 초여름 바람을 의미하는데, 그 바람은 꽃을 피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가이후칸을 지은 사람은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공부한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집을 단 한 채도 지은 적이 없는 초짜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 그리고 그에게 설계를 맡긴 이는 우치다 다츠루. 『일본변경론』이란 책에서 잠시 이름을 들어 본 바로 그 우치다 다츠루다. '일본인 = 변경인'이라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내 기억에서 잊힌 지 꽤 되었는데 이 『모든 이의 집』에서 다시 그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책은 가이후칸의 건축주 우치다 다츠루가 아니라 그것을 지은 고시마 유스케의 이야기다. 첫머리에 썼듯 부지를 고르게 하고 골조를 꾸민 뒤 벽과 지붕을 올려 집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ㅡ 고시마는 자신의 첫 작업물에 이러한 수많은 괴물들이 관여했다며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적고 있다. 건축주의 발주와 그에 따른 수주의 딱딱한 메커니즘이 아닌ㅡ 약 280제곱미터가 되는 부지에 사람이 들어가고, 앞으로 어떤 장소가 되어갈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 매력. 책 말미에는 고시마 유스케, 우치다 다츠루 그리고 『슬램덩크』와 『배가본드』로 유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와의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처음엔 왜 난데없이 그가 등장하는 걸까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업실에 농구 코트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치다 다츠루는 합기도 6단의 무도가이기도 해서, 언젠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본 농구 코트에서 가이후칸 1층에 마련된 도장의 힌트를 얻었다는 것이다. 도(道)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다소 심오한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찌 보면 가이후칸은ㅡ 초짜 건축가 고시마 유스케의 첫 작업은, 『슬램덩크』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