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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명화와 수다 떨기』 꾸예 (다연, 2014)


명화와 수다 떨기 - 8점
꾸예 지음, 정호운 옮김/다연


작부터 카라바조로구나. 누명인지 무엇인지, 하여튼 살인범이 되어 도망자 신세로 지낸 그 카라바조다. 제멋대로인 성격과 정서불안으로 설명되곤 하는 그의 ‘뎅강 잘린 목’이 기억에 남는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인데, 나는 목의 주인이 배우 휴 잭맨을 많이 닮았어, 라고만 생각할 뿐 그림의 이름이나 제목은 전혀 알지 못하던 차였다. 카라바조는 살인범, 도망자, 기사, 탈옥수를 전전하다가 우스꽝스럽게도 열병에 걸려 숨졌다. 그러고 보니 <세례 요한의 목을 벰>에 피로 등장하는 그의 유일한 사인은 어찌 보면 다잉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동시에 그것이 사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기도 하고. 책에는 고흐를 비롯해 세잔, 르누아르, 렘브란트 등이 나오는데, 내 개인적 취향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순간이다. 사실적인 묘사는 물론이거니와 찰나의 포착이 좋은 그림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런 측면에서라면 역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카라바조를 으뜸으로 꼽는다. <카드 사기꾼>은, 지난 소더비 경매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거다(어쩐지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사기꾼 중 하나는 속임수를 쓰기 위해 허리 뒤춤에서 여벌의 카드를 꺼내고, 나머지 하나는 꾐에 넘어가는 남자 뒤에 서서 손가락으로 그의 카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빤히 쳐다보는 튀어나올 듯한 눈알과 이맛살, 시옷 자 입매가 인상적이다(거기다 구멍 난 장갑까지!). 붉은 입술의 청년은 뭔가 좋은 패가 들어온 것 마냥 미소가 번지기 일보 직전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카라바조의 그림에 완전히 빠져 이곳저곳을 들쑤신 끝에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다. 도저히 방에 걸어둘만한 공간이 없는데도 주문할까 말까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이 멍청함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