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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자와 세이지 (비채, 2014)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8점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래식이든 그 비슷한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로서는 죽었다 깨도 안 될 말이다. 쇼스타코비치, 디터 체흘린의 베토벤 소나타, 힐러리 한, 야니네 얀센, 율리아 피셔, 오토 클렘페러, 이 정도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인데, 연주에 사용된 악기 구성이 현저하게 달라지지 않는 이상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이를테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설명하는 부분에 '서주에 이어 도도도도 하는 거센 멜로디가 나온다'고 쓴 구절이 있다. 나는 그것을 들으면서도 이 부분인가, 저 부분인가,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헤맬 정도다. 이런 내 앞에서 클래식 이야기를 하겠다니, 하는 반신반의의 마음가짐으로 책을 펴들었다. 그런데 이 양반들, 주전부리를 옆에 놓은 채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지지며 미주알고주알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이따금, 어, 거기, 거기야, 하면서 가려운 등짝을 내미는 것처럼. 몇 곡이라도 모아 책 출간과 함께 음반도 기획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한편, 하루키와 더불어 오자와 세이지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클래식 이야기는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때때로 그건 그래,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지만 희끗희끗한(실은 반백에 가깝다) 아저씨의 사람됨만은, 특히 음악에 관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짐짓 비밀스레 느껴지기도 하는 무대 밖 이야기도 역시 좋은데, 하루키가 그의 소설 속에 음악 이야기를 단 한 문장이라도 쓰지 않는 날이 오기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기도 한다. 실로 그 때문에 알게 된 음악도 꽤 되니 말이다. 물론 종국엔 그런고로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봐야겠지만……. 만일 하루키가 자꾸만 자신을 문외한이라 칭하지 않고 진행된 일방통행이었다면 모르나, 담백한 제목처럼 클래식 한 소절이라도 들어봤음직한 사람이라면 썩 괜찮은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어딘지 모르게 두 사람의 '합'도 나쁘지 않고. 때로는 모호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곳도 있어 가만가만 읽다 보면 앞서 말했듯 정말이지 옛날이야기 한 자락을 듣는 것만 같다. 나로 말하면 하루키 스스로 문외한이라 일컫는 것보다도 훨씬 이쪽 이야기에 전무후무한 무(無)지식을 자랑하지만, 클래식은 이런 거야, 이 부분은 이렇게 들어야지, 가 아니라 주먹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실제로 둘의 대담 사이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설렁설렁 읽기만 해도 기분이 묘해지기 일쑤다. 도톰한 이불 속에 들어앉아서라면 더욱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