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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웰컴, 삼바』 델핀 쿨랭 (열린책들, 2015)


웰컴, 삼바 - 8점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열린책들


효가 만료된 임시 허가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인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반대로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도 없으며, 그저 공무원 옆구리의 서류철 바깥에서 맴돌 뿐이다. 갈가리 찢긴 접수증도 마찬가지. 왜? 그쪽 역시 유효기간이 끝나버렸으므로. 종이에 찍힌 숫자놀음, 그리고 급여 명세서와 각종 청구서, 은행계좌 출금 명세서와 같은 '생활의 증거들' 없이는, 당신은 당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조차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민국 국장은 널 믿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체류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야.」 삼바가 그의 삼촌으로부터 체류증을 '물려받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신분증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삶 자체가 없는 것과 같은 의미였을 테니. 더군다나 그가 삼촌의 지하 아파트에서 몰래 자라던 버섯을 낚아채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이미지들(거북이나 연어)보다도 생경함이 없다. 가끔 움츠러들거나 쓰러지기도 하지만 버섯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직립하려고 하는 까닭에. 소설은 외국인 노동자의 업무상재해나 죽음처럼 심각한 양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주자의 모습을 담백하게 스케치함으로써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를테면 그들의 생활상과 '취급'에 분노하기보다 그들이 갖는 심성적 흐름에 동조하게 된다. 『웰컴, 삼바』는 작가 자신이 이민자와 난민을 돕는 시민단체 시마드(cimade)에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탄생한 소설이지만 '벌집'으로 묘사되는 바티뇰의 격리 상설창구라는 낯설기만 한 장소에서의 각양각색 만남들은, 차라리 이것이 허구로 꾸며낸 문장에 불과했으면,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삼바가 구겨진 종이, 음식 찌꺼기, 찌그러진 플라스틱, 과일 껍질, 머리카락 뭉치 등 쓰레기를 분류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삐 손을 놀릴 땐, 그는 동시에 자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스스로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시커먼 얼굴'인 삼바는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제 이름은 삼바 시세예요. 그리고 전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