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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브릴리언스』 마커스 세이키 (황금가지, 2015)


브릴리언스 - 8점
마커스 세이키 지음, 정대단 옮김/황금가지


버트 소여에 의하면 SF란 '현재에는 없을지라도 인간의 인식이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데 『브릴리언스』가 이 정의에 얼마나 들어맞을는지는 모르겠다. 근미래, 사이버펑크, 하드SF, 소프트SF 등의 말을 갖다 붙여도 얼추 비슷한 내용을 품고 있으면서, 또 결정적으로 여기에 뮤턴트(돌연변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여서ㅡ 영화 《엑스맨》처럼 분류되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장애로 바라보기도 하는 서번트 증후군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특수한 능력을 가진 '브릴리언트'들에 의해 꾸려진다. 이들은 하나가 흥하면 하나가 망하는ㅡ 이를테면 천재와 장애라는 플러스마이너스의 개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똑같으면서도 저마다 초인(超人)과 같은 특수능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늘어놓는지를 파악하거나 숫자와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래프와 데이터만으로 점쟁이처럼 뒷일을 맞히는가하면(사실 점쟁이들보다 훨씬 낫지만) 벽을 통과해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널 수 있는 브릴리언트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닉 쿠퍼는 공정국(어감만으로도 친근감이라고는 전혀 없다) 소속의 브릴리언트로 나랏밥을 먹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거물 테러리스트를 검거하는 것만은 그다지 여의치 않다…… 라는 것이 『브릴리언트』의 시작이다. 인구 백 명당 한 명 꼴이라던 브릴리언트는 일견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 정도로 취급될 법하지만 그들이 작심하고 일을 벌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전쟁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고. 하여 쿠퍼가 스스로 경찰 무리에서 빠져나와 테러리스트 쪽에 붙어먹으며 그들을 와해시키려는 배신자 역할을 떠맡는다, 라는 것이 소설의 기본 구조다. 대강 알아본 바에 의하면 소설은 단권으로 끝나지 않고 총 삼부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단다. 그래, 그래야지. 기껏 뮤턴트라는 것을 설정해놓고 이렇게 끝내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단 삼부작 중 이 『브릴리언트』는 일종의 전초전에 해당할 듯싶고, 종반의 「누구에 의해?」라는 이 한마디 물음이 인류간의 다툼을 촉발한 계기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며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대화로 끝이 난다. 「그런 짓을 하고도 밤에 잠이 옵니까?」 「그래서 수면제를 먹지. 철 좀 들게.」 뒷사람의 마지막 문장 뒤에는 생략된 말이 있는데, 이 지구가 만들어져 멸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논리가 숨어있다. 부디 책에서 확인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