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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혁명의 맛』 가쓰미 요이치 (교양인, 2015)


혁명의 맛 - 8점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교양인


추의 매운맛을 즐겼다던 마오쩌둥이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던데, 일단 혁명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중국요리는 세계적인 성격까지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누가 그랬던가, 중국인들은 식탁 다리 빼놓고 네발 달린 것은 다 먹는다고. 그러나 본디 저 옛날부터 미주(美酒)는 있었어도 미식(美食)이란 것을 즐기는 문화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발달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환관의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권세를 부리기 쉬운 환관들이 비정기적인 수입, 즉 뇌물을 비롯해 산해진미와 진귀한 식자재에까지 눈을 돌렸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대신한 보상심리였을까? 바깥에서 궁으로 들어오는 고급 식자재는 환관이 관리하는 민간 중개업자를 거쳐 끝에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이를테면 서태후가 먹는 달걀 하나는 단계적으로 여러 환관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그 금액은 오늘날의 물가로 보면 대략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환관들이 당대 요리 발전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기여를 인정해주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덕에 질 좋은 식재료의 경로가 확립되고, 고급 식자재가 요리법과 더불어 시중 음식점으로 퍼졌으며, 궁중에서 만들던 요리가 진화해 더욱 세련된 음식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ㅡ 글쎄, 아무리 중국요리의 역사가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너무한 처사일지도. 어쨌든 다소 지난했던 시기를 건너뛰어 공산당 정부의 베이징 그리고 국민당 시대로 가 보면 중국요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국의 요리 또한 인기를 모으게 된다. 미군이 있었으니 관련 물자가 여기저기서 흘러들었던 탓이었을 거다. 뜻밖에도 여기서 내가 한 가지의 '꼰대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첫머리에 언급한 마오쩌둥에게서였다. 그는 생선 머리 탕인 다터우위탕(大頭魚湯)을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좀 우습다. 생선 머리를 먹으면 대뇌가 발달하여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거나 하는 식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생선 머리 탕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문화혁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대통령이 똑똑해지고 싶다며 총명탕(聰明湯)을 들이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혁명의 맛』은 이후에도 대기근과 홍위병, 덩샤오핑, 홍콩요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음식과 맛의 여로에 오른다. 자, 다소 신기하게도 보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동침이 가능해진 중국(특히 베이징)이라고 하면 언뜻 개혁이나 개방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때로는 옛 맛을 잃어버려 탄식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세련되어지고 또 새로운 맛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사회경제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것이겠으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초라한 음식을 먹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으로 인식되던 때는 지났다. 저자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경제와 미각의 발달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았는데 이 책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그렇다고 느낄 수가 있다. 문화의 흐름이란 거대한 강물과도 같아서 인위적인 간섭으로는 막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의 물음대로 과연 음식 문화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여기서 중국의 여러 풍경들을 통해 그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