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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채플린의 풋라이트』 찰리 채플린, 데이비드 로빈슨 (시공사, 2015)


채플린의 풋라이트 - 8점
찰리 채플린.데이비드 로빈슨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모반듯한 콧수염과 중절모로 해학과 풍자의 신화가 된 찰리 채플린. 『채플린의 풋라이트』는 그의 전기도 아니며 온전한 삶의 궤적을 두루 훑지는 않으나, 그가 제작했던 영화 《라임라이트》의 모태가 된 소설 『풋라이트』를 통해 채플린의 고단한 생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의 유일한 (자전)소설에는 왕년에 잘나가는 배우였던 남자 칼베로와 그가 자살의 늪에서 구한 어린 여인 테리가 등장한다. 칼베로의 보살핌에 테리는 발레리나로서의 삶을 피우게 되지만 정작 그를 구해준 남자는 시들어가기만 할뿐 좀처럼 자신의 삶을 깨고 나아가지 못하고, 훗날 생애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죽어가는 칼베로의 눈에는 관객 앞에서 춤을 추는 테리의 모습이 달의 여신 디아나로 현현된다. 그러나 끝내 광대 칼베로의 머리엔 의사의 손에 의해 조용히 흰 천이 덮인다. 이처럼 소설 『풋라이트』는, 그리고 영화 《라임라이트》는 관객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물간 배우의 고달픔을 그린다. 예전엔 위세를 떨쳤으나 지금은 초라한 광대일 뿐인 칼베로, 채플린은 칼베로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했다. 두렵고 무상한 시간의 흐름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ㅡ 오래전 DVD를 구해서 보았는지 어쨌는지ㅡ 칼베로의 대사로 기억한다ㅡ 이 '시간'에 관한 문구가 어렴풋이 기억나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기어이 찾아내고 말았다. 「Time is the best author. It always writes the perfect ending.」 한국어로 옮기자면 「시간은 최고의 작가이지. 늘 완벽한 결말을 쓰거든.」 정도가 될 듯싶다. 이 말을 글로 쓰고 보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채플린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보편성이 얼마나 슬픈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로만 그를 기억하고 있을지라도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꼭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숨을 거둔 채플린은 생전 '영화는 나무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무를 흔들어대면 모든 느슨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떨어져 나가고 결국 본질적인 형식만 남게 된다는 의미다.(p.271) 비단 영화(제작)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는지 모른다. 『라임라이트』에서 흐르는 구슬픈 「테리의 테마」와 함께 채플린의 ㅡ 그의 영화와 삶, 그리고 우리의 삶 ㅡ 희비극은, 찬란함과 애달픔을 모두 지닌 오늘날의 우리로 하여금 화려한 조명 뒤 쓸쓸한 뒷모습을 되살려낸다. 과거 코미디언 박명수가 끄집어낸 역발상 또한 그런 맥락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