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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자발적 복종』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생각정원, 2015)


자발적 복종 - 10점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심영길 외 옮김/생각정원


라는 저 유명했던 격문에서 '부끄러운 공포'를 언급했다. 용감한 자와 겁쟁이, 배신자, 부패한 인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자……. 그런가하면 만델라는 권력의 이름으로 자유인 신분을 얻을 수 있었을 때 ㅡ 「나는 나가지 않겠다. 당신들에겐 나를 석방할 힘이 없다.」 ㅡ 자신의 자유 의지를 굳건히 했다. 그리고 이 『자발적 복종』의 역자는 라 보에시의 주장을 위해 프랑스 혁명기의 웅변가 피에르 베르니오의 연설을 인용한다. 「독재자가 커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의 무릎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선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 위에 있지 않을 것이다.」 라 보에시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종종 사고뭉치, 불평분자, 사회부적응자, 빨갱이라 부르곤 하나, 이것은 그와 같은 자들이 냉소, 무질서, 빈정거림 등으로 점철되어 있을 때에만 비아냥거릴 심산으로 내뱉을 수 있는 단어들에 불과하다. 반대로 전대미문의 뻔뻔함과 역겨운 입놀림은 독재자를 한층 비열하게 하는 동시에 침묵하는 대중으로 하여금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나 보라, 무엇인가 정의로운 것(들)을 실현키 위해 움직이는 투쟁은 이처럼 시대를 건너 영원히 썩지 않을 좋은 사례가 된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


본문 p.81



라 보에시는 말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원하기만 한다면 취득할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p.50) 자유란 이 담배에서 저 담배로 불을 옮기듯 마음대로 조몰락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욕을 당하고, 믿음이 꺾이고, 분노에 휩싸이며, 위선의 권력을 목도한 채 항의하지 않는 것은 그저 먼발치에 서서 시시껄렁한 야유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때때로 정의와 자유를 원하는 것이 죄악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지금의 세계는 우리에게 재갈과 안장에 길들여진 말 흉내를 내도록 한다. 「피리로 새소리를 내는 사냥꾼에 속아 쉽게 잡히는 새와 맛있는 지렁이를 끼운 낚시꾼에게 더 빨리 입질하는 물고기가 사람들 중에는 없다고 생각지 마시라.」(p.94) 왜 그런가? 독재(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수작을 걸며 접근하여 그들(우리)을 나약하게 만든다. 그런고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선거철이 되면 '투표 호갱'이 된다. 본디 우리의 것이었음을 망각한 자들이 달큼한 것을 대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동시에 벌어지는 일ㅡ 아주 끔찍한 일이다ㅡ 자발적 복종을 뿌리치려는 사람들은 권력과 독재에 반항하는 불순분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바로 그들과 같은 국민(대중)으로부터 말이다. 과거 박정희가 유신(維新)을 계획하고 결과를 물어보자 망설임 없이 유신(幽神)이라고 답해 정부기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 어느 유명한 점술가의 일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폭군이 나눠준 미약한 선물은 사실 독재자가 먼저 그들에게서 탈취해간 것을 일부 돌려주는 것일 뿐인데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본문 p.96



불꽃에 달려든 나비는 결국엔 타 죽고 만다. 이것은 독재와 그것에 자발적 복종 태도를 취하는 쪽 모두에 해당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타 죽기 전에 먼저 적응한다. 이 적응은 대단히 위험한 물건으로, 우리는 자발적으로 재롱부리는 말을 자처하면서 무시무시한 철퇴만 아니라면 감히 발버둥 칠 마음을 먹지 않게 된다. 그와 동시에 독재자는ㅡ 선거로 권력을 쥔 지배자들은 민중을 마치 사나운 황소를 길들이듯 취급하고, 정복자들은 백성을 노획물로 여기며, 권력을 세습받은 자들은 백성을 그들의 당연한 노예로 간주한다.(p.65) 지금의 한국사회를 보자. '득도' 혹은 '달관'이란 단어가 성인(聖人)의 그것이 아니라면 이것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앞서 말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적응'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에 나는 주저 없이 동의할 수 있다. 지긋지긋해 얼른 끝내버리고 싶다는 순 엉터리 같은 위축된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가 충실한 노예임을 증명케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누구 말마따나 '오른손으로 주는 척했던 것을 왼손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판단하지 못한 채 자발적인 복종에 발을 디밀고 마는 기이한, 아주 기괴한…… 이 빌어먹을 복종! 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