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사사키 조 (비채, 2015, 개정합본판)

· 책_롱 2015. 3. 5. 11:39
  • 단권일 때 읽었었는데 왜 합권이 됐지 하면서 오늘 들었다 놨습니다 ㅎㅎ 사사키 조의 다른 책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작품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일본 쪽에서 경찰을 너무 자주 우려먹어서 답답하긴 하지만, 그중에 괄목할만한 '대서사시' 같은 거죠.

    BlogIcon 서울한량 2015.07.29 23:43 신고
    • 정말이에요. 경찰소설치고는 범인과 쫓고 도망하는 관계보다 오히려 경찰들간의 이야기가 장구하게 그려져서..ㅎ 과연 사사키 조구나, 하는 말이 다시금 나왔습니다.

      BlogIcon 아잇 2015.07.30 09:37 신고 DEL


경관의 피 - 8점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대에 걸친 경찰소설. 이제껏 읽었던 경찰소설이랄까, 경찰이 등장해 주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소설이라면 그중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과거 두 권으로 나왔던 것이 새롭게 단권으로 합본되어 재출간되었다. 「단속할 상대를 닮아가는 게 형사다, 강력범을 상대하다 보면 강력범처럼 되고 사기꾼을 상대하면 사기꾼처럼 된다」ㅡ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 안조 세이지의 입을 빌린 말이다. 어차피 처리할 수도 없는 압수품(양담배)을 적당히 나누어 갖는 것에도 거리껴하며 시민의 편으로서의 경찰관이 되고 싶다던 남자. 과연 그는 강력범도, 사기꾼도 되지 않고 올바른 윤리에 입각한 경찰이 되었을까? 어느 날 공원 연못에서 남창(男娼) 하나가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은 미결로 남게 되는데, 몇 년 후 젊은 국철 직원도 변사체로 발견되어 이 또한 쉬 해결되지 않는다. 안조 세이지가 알게 된 것은 죽은 그들이 경찰과 접촉하고 있었다는 것뿐. 시간이 흘러 사찰 주재소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바로 그 사찰에서 발생한 화재를 맞닥뜨리게 되고, 지난날 죽은 자들과 접촉했을지도 모를 경찰을 봤다는 목격자에 의해 잠시 화재 현장을 벗어난 뒤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28년 후, 그를 따라 경찰이 된 아들 안조 다미오. 우연찮게 수십 년 전 아버지를 잃었던 화재사건 당시에 찍힌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지만 그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안조 세이지는 자살, 그의 아들 다미오는 순직. 그 결정적인 사진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죽음에 수상쩍은 기분이 들었을 찰나였다. 또 한 번 시간이 흐른다. 세이지의 손자이자 다미오의 아들, 안조 가즈야. 공안부의 잠입수사를 진행했던 아버지 다미오처럼 그 역시 상관의 비위를 캐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안조 다미오와 안조 세이지의 죽음의 진상이 점차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사키 조는 당시 『경관의 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연 이 소설을 적확히 '미스터리'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소설은 안조 세이지와 안조 다미오의 죽음에 대한 부분보다 삼대 경찰관이 겪는 개개의 사건들의 세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아마도 전후 일본의 현대사를 훑는 스토리로 인해 당시 일본인들의 심리를 토닥이기도 했던 점이 높이 평가되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의 수상 이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내 쪽에서는 전혀 구애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관의 피』가 어떤 상을 받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이번 합본판이 출간되고 나서야 위에서 언급한 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정도니까. 『경관의 피』는 당시 패전국인 일본의 정서라는 점을 걷어내고 나면 정말 잘 쓴 소설임에 틀림없다ㅡ 그 반대라면 그렇지 않은 것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사회조직이란 구조와 틀을 빼어나게 묘사했고 가부장의 성질을 잘 그려냈으며 또 그런 방식으로 읽혀야 한다. 물론 떼려야 뗄 수 없을 것만 같던 이 두 가지 명제는 갈수록 옅어지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사회와 조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좀처럼 갈라서지 못하는 부부와도 같아서, 하나의 조직은 조직원(개인)으로 하여금 사회라는 톱니바퀴의 한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때때로 스스로 벽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내 뒤에 올 사람(자식, 후배)이 잇는다, 그리고 그 사람 뒤에는 또 다른 세대가 기다리고 있다, 톱니바퀴는 그렇게 맞물려 돌아가야 하고 이 빠진 부분이 생기면 즉시 보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조직이며 하나의 사회다. 『경관의 피』는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해 일종의 연대기를 써내려간 것이나 다름없다. 마침 단권으로 새 단장을 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좋은 기회일 터.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