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12일』 고경태 (한겨레출판, 2015)

· 책_롱 2015. 3. 9. 11:35


1968년 2월 12일 - 8점
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


아(彼我)를 나누고, 상처를 만든다. 토큰 경제에 따라 행동하며 '살인'보다는 '교전'이라 완곡히 표현한다. 사람들이 죽었고, 그날 f, g, O, P번 따위로 명명된 사진은 지금도 살아있다. 『1968년 2월 12일』의 그날 하루만이 끊임없는 동어반복 위에서 울고 있을 따름이다. 소녀는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창자를 부여잡았고 그녀의 동생은 입속에 넣어진 총알을 먹고 죽었다. 소년이 총 맞은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난자당한 다섯 살배기 동생을 목도할 때, 건너에서 젖을 먹이던 엄마는 난데없는 죽음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 모든 각각의 세상 반대편엔 총칼을 든 군인들이 있었다. 학살이다. 해병제2여단 1중대원들이 마을에 진입한 뒤 주민 74명이 살해되었고 7년 뒤 전쟁은 종결된다. 한참 시간이 흘러 2001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쩐득르엉 베트남 주석에게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한다. 그리고 이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비난한다. 6.25 참전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거듭 시곗바늘이 돌아 2013년. 이제는 수교를 맺은 베트남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라 불렀다. 양국 사이에 이루어진 수만 건의 국제결혼에 비유한 것이다. 정말 한국과 베트남은 사돈의 나라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이렇게나 많은 부부가 탄생했으니.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돌려 1968년으로 돌아가면, 그래도 베트남과 한국은 친절한 사돈의 나라일까?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플래툰》에서, 미국군 반스는 울부짖으며 항의하는 촌장의 아내를 거리낌 없이 사살하곤 촌장의 어린 딸을 총으로 겨눈다. 그리고 곧 내처 동료 일라이어스가 등장해 개머리판으로 반스를 내리치며 주먹다짐을 벌인다. 반백년 전 베트남의 퐁니, 퐁넛에는 일라이어스가 없었나 보다.





엄마 젖을 빨던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된 아이는 그 품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레딘먼이라 이름 붙여진 아이가 놀랍게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한편에서 탄생한 조사보고서라 불린 어처구니없는 종이 쪼가리 하나. 우리는 절대 양민을 학살한 일이 없다, 한국군 위장복으로 변장한 베트콩들의 소행이다. 이 한마디로 끝났다. 이 사람들이 이쪽에서 보면 이런 것이고, 저 사람들이 저편에서 보면 저런 것이다. 군사학과 교수였으며 그 자신이 군인이기도 했던 데이브 그로스먼은 자신의 책에서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총수의 80에서 85퍼센트는 자신 또는 전우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군을 보고도 무기를 쏘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총을 쏘지 않은 군인의 비율은 5퍼센트에 가까웠다, 라고. 살해에 대한 거부감과 그러한 '둔감화'를 언급한 것이다. 1968년 2월 12일 그날도 그랬던 것일까?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죽임 당한 상대가 무기를 든 적군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교전'이 아니라 '살해'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 살해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면 그것에는 '면죄'라는 탈이 씌워져 공공연하게 '적법화'되기도 한다. 다시 데이브 그로스먼. 「잔학 행위가 낳게 되는 최악의 사태는, 잔학 행위를 하나의 정책으로 제도화하고 시행하게 될 때 그 사회는 잔학 행위가 벌려 놓은 일들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살인의 심리학』 플래닛, 2011) 정부의 파병과 귀국 이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던 한국군 역시 전쟁 이후엔 피해자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해자였을 땐 상대는 총칼은커녕 삽 한 자루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제 베트남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으나 이 '공식적'이란 표현은 정치화된 달큼한 단어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도, 1968년 2월 12일은 계속되고 있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