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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나와 춤을』 온다 리쿠 (비채, 2015)

나와 춤을 - 8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찌된 일인지 온다 리쿠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별로 없다.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꽤 되는데도 지금껏 장편소설 두어 편 정도만 읽었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단편집 『나와 춤을』은 그간 그녀의 작품 세계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는지를 다소나마 요약, 압축해준다(실은 더 확장성을 띠고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산책 중이던 고양이가 낮잠을 자는 내 머리를 밟고 지나가려다가 내 왼쪽 귓구멍 속에 빠졌다.」(이유) 「조그만 분홍 별을 살며시 입에 넣었다. 은은한 단맛과 함께 하나의 우주가 입안에서 팡 터졌다.」(도쿄의 일기) 독특한 판타지 풍 문장이 뒤섞인 이야기들은 때론 어처구니없게 때로는 교묘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특히 책 뒤쪽으로 갈수록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더욱더 희미해지는데,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함과 한데 뒹굴며 멋진 환상세계를 구축한다(하루키 식 단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사라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운명의 변심을 막으려 고군분투하는가 싶다가도 양자택일과 주사위를 엮은 이상야릇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가하면 강아지는 주인을 위해 떠듬떠듬 편지를 쓰고 사람의 귓속엔 고양이가 빠진다.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하나같이 묘한 비현실에서 착안한 있음직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건너편에 서 있다. 환상을 현실로 가져오는가 싶었는데 곧바로 현실이 환상으로 변모해버리는 식이다. 개인적으론 이야기에 힘이 있다기보다 그 힘을 물렁물렁하게 반죽해 죽죽 펴낸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비아냥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칭찬에 가까운 것이, 『나와 춤을』을 통해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그녀의 장편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넓게 펴진 반죽을 조각내 썰어 빚은 것이 바로 이 단편집이라고 말이다. 개중에는 도대체 어째서 이 부분을 마무리 짓지 않고 끝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었다. 이제 막 흥미진진해지려는데 왜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거지, 하고. 그리고 단편집 전체를 다 읽고 나니 모든 작품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것을 알았다. 왜일까. 지금 나는 완결이지만 미완의, 미완성의 현실이지만 완성된 판타지의 택일할 수 없는 교차점에 서 있는 건가?